
생성형 AI가 사무실과 개발 현장으로 빠르게 들어오면서 기업 보안의 최전선도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직원 노트북과 서버, 업무용 단말기를 악성코드 감염 뒤 탐지하고 대응하는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강했다. 그러나 AI 에이전트와 자동화 도구가 직접 코드를 내려받고, 패키지를 설치하고, 업무 데이터에 접근하는 환경에서는 단말기 자체가 더 능동적인 위험 지점이 된다.
미국 팔로알토에 본사를 둔 사이버보안 스타트업 글로우는 이 변화를 정면으로 겨냥해 모습을 드러냈다. 회사는 22일 공개 행보를 시작하며 1억8000만달러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고 밝혔다. 이번 투자는 전액 지분 투자로 진행됐고, 회사 가치는 12억달러로 평가됐다. 세쿼이아캐피털, 사이버스타츠, 그리녹스, 레드포인트벤처스 등이 주요 투자자로 참여했다.
AI가 단말기 보안의 전제를 바꿨다
글로우가 내세우는 문제의식은 명확하다. 기업이 AI 도구를 도입할수록 직원 단말기에서 실행되는 소프트웨어와 개발자 도구, AI 에이전트의 권한과 행동을 더 세밀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격자 역시 생성형 AI를 이용해 피싱 문구를 자동화하거나 악성코드를 개선하고, 취약점 탐색을 더 빠르게 수행할 수 있다. 방어자 입장에서는 단말기 위에서 벌어지는 작은 변화가 곧 조직 전체의 위험으로 번질 수 있다.
특히 개발 조직에서는 오픈소스 패키지와 외부 도구 의존도가 높다. npm 같은 패키지 생태계에서 악성 구성요소가 유입되면, 해당 코드는 내부 시스템과 빌드 파이프라인으로 확산될 수 있다. AI 에이전트가 개발 보조 역할을 맡는 경우에는 사람이 직접 확인하지 않은 의존성을 끌어오는 상황도 생긴다. 글로우는 이런 흐름이 기존 엔드포인트 탐지·대응 제품만으로는 충분히 다루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회사는 자체 플랫폼이 기업 환경을 지속적으로 매핑하고, 단말기에서 실행되는 소프트웨어와 AI 도구의 위험을 실시간으로 평가하며, 보안 정책을 적용한다고 설명했다.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인 로이 타이거는 AI가 클라우드나 SaaS 영역을 넘어 단말기에 직접 내려앉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단말기가 단순 접속 지점이 아니라 AI 실행과 자동화가 일어나는 공간이 됐다는 뜻이다.
메타·스노우플레이크 출신 창업진의 승부수
글로우는 2025년 설립됐다. 창업진에는 메타 엔지니어링 부사장을 지낸 로이 타이거, 스노우플레이크에서 사이버보안 전략을 맡았던 오메르 싱어, 클래로티 연구개발 임원 출신 오피르 아리, 메타 엔지니어링 리더 출신 아르논 조셉이 포함됐다. 운영 책임자로는 유나이티드항공과 도큐사인에서 최고정보보호책임자를 지낸 에밀리 히스가 합류했다.
회사는 아직 매출과 고객 수를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헬스케어, 유통, 금융 등 여러 산업에서 유료 고객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일반적인 도입 규모는 전 세계 조직에 흩어진 수만 대의 직원 단말기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글로우는 앤스로픽과 구글 제미나이 모델을 아마존 베드록을 통해 활용하면서, 보안 업무에 필요한 기업 맥락과 신뢰성을 높이는 자체 소프트웨어를 결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고객 환경에서 악성 npm 패키지 설치를 막거나, 그런 패키지를 가져오려는 AI 에이전트의 움직임을 확인하고, 엔드포인트 탐지·대응 도구가 빠져 있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단말기를 찾아낸 사례도 제시했다. 이는 글로우가 스스로를 단순 탐지 제품이 아니라 위험한 도구와 소프트웨어가 기업 환경에 들어오기 전 차단하는 플랫폼으로 포지셔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혼잡한 시장에서 새 범주가 될 수 있나
엔드포인트 보안 시장은 이미 크라우드스트라이크, 마이크로소프트, 센티넬원, 팔로알토네트웍스 같은 대형 사업자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분야다. 글로우가 유니콘 가치로 등장했다는 사실은 투자자들이 AI 확산에 따른 보안 재편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높은 기업가치가 곧 시장 지배력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 쟁점은 AI 네이티브 엔드포인트 보안이 독립된 제품 범주로 자리 잡을 수 있는지다. 기존 보안 업체들도 AI 기능을 빠르게 통합하고 있고, 기업 고객은 이미 사용하는 보안 스택 안에서 새 기능을 받는 방식을 선호할 수 있다. 반대로 AI 에이전트와 개발 도구 통제가 별도 전문성을 요구한다면, 글로우 같은 신생 업체가 빠르게 입지를 만들 여지도 있다.
분명한 점은 기업 보안 담당자가 이제 ‘무엇이 단말기에서 실행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묻고 있다는 사실이다. AI가 업무를 돕는 만큼, AI가 가져오는 코드와 도구, 권한도 감시 대상이 됐다. 글로우의 등장은 이 변화가 투자 시장과 보안 제품 전략 모두에서 이미 중요한 의제로 올라섰다는 신호로 읽힌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