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서귀포의 한 워터파크가 글로벌 애니메이션 지식재산권(IP)을 앞세운 몰입형 전시장으로 바뀌었다. 워터월드 제주에서 지난 4일 개막한 ‘원피스 대해적시대 아시아 투어 in Jeju’는 관람객이 실제 물길을 걸으며 작품 속 항해지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폐장 또는 유휴 상태에 가까웠던 대형 물놀이 시설을 콘텐츠 전시장으로 다시 활용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례는 제주 관광 산업과 IP 비즈니스가 만나는 실험으로 주목된다.
전시는 닷밀과 인큐베이스 스튜디오가 함께 선보인 국내 첫 ‘워터 미디어’ 형태의 원피스 전시다. 관람객은 발목 높이의 물이 차오른 공간을 지나며 로그타운, 그랜드라인, 임펠다운, 마린포드, 어인섬, 에그헤드 등 원작의 주요 무대를 순서대로 경험한다. 벽면 미디어아트와 조형물, 향과 질감, 유수풀과 파도풀을 결합해 애니메이션 장면을 단순히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신체적으로 체감하도록 설계했다.
콘텐츠가 시설의 쓰임을 바꾸다
이번 전시의 경제적 의미는 공간 재활용에 있다. 대형 워터파크는 계절성과 유지비 부담이 큰 시설이다. 여름 성수기를 제외하면 운영 효율이 떨어지기 쉽고, 지역 관광지에서는 새로운 방문 동기를 계속 만들어야 한다. 원피스 전시는 기존 풀장, 유수풀, 샤워 시설의 구조를 완전히 지우기보다 물과 동선을 전시 연출의 일부로 끌어들였다. 시설의 약점이던 고정된 물놀이 구조가 오히려 원작의 ‘항해’ 서사를 살리는 장치가 된 셈이다.
원피스는 1997년 연재를 시작한 뒤 세계적으로 거대한 팬덤을 형성한 만화 IP다. 누적 발행 부수와 캐릭터 상품, 애니메이션, 게임, 전시를 아우르는 사업 규모가 큰 만큼, 특정 지역에 전시가 열리면 팬 방문과 굿즈 소비, 주변 상권 이용을 함께 끌어낼 수 있다. 제주처럼 항공 이동이 필요한 관광지에서는 전시 하나가 여행 목적이 되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지만, 기존 여행 일정에 결합되는 강한 부가 동기가 될 수 있다.

보는 전시에서 젖는 전시로
관람 방식도 최근 전시 시장의 흐름을 반영한다. 관람객은 약 20cm 깊이의 파도풀을 지나고, 200m가량 이어지는 유수풀을 따라 대감옥 임펠다운과 마린포드 구간을 걷는다. 어인섬 구역에서는 일정 간격으로 물줄기가 떨어지고, 스카이피아 구역은 향과 조형물을 활용해 분위기를 바꾼다. 사진 촬영에 적합한 장면만 늘어놓는 전시가 아니라, 이동 자체가 체험이 되도록 구성한 점이 차별화 요소다.
이런 방식은 가족 관람객과 팬덤 관람객을 동시에 겨냥한다. 원작을 잘 아는 관람객은 장면마다 숨어 있는 설정과 상징을 읽어낼 수 있고, 원작에 익숙하지 않은 관람객도 물놀이와 미디어아트가 결합된 새로운 실내 관광 상품으로 접근할 수 있다. 특히 폭염이나 우천 같은 날씨 변수에 취약한 여름 여행지에서 실내형 체험 콘텐츠는 일정 대체재로 기능할 가능성이 있다.
지역 관광의 과제도 함께 남았다
다만 글로벌 IP 전시가 지역 관광의 지속 가능한 해법이 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전시가 끝난 뒤에도 시설 운영 경험과 방문 데이터가 다음 콘텐츠 기획으로 이어져야 한다. 둘째, 굿즈숍과 카페 소비에 머물지 않고 주변 숙박, 식음, 교통과 연결되는 패키지가 만들어져야 한다. 셋째, 해외 팬과 가족 단위 관광객을 모두 고려한 다국어 안내와 안전 관리가 충분해야 한다.
이번 전시는 2027년 1월 3일까지 운영될 예정이다. 입장료는 성인 2만7000원, 청소년 2만4000원, 어린이 2만2000원으로 책정됐고 제주도민 할인도 제공된다. 가격대만 보면 단순 전시보다 체험형 테마 시설에 가깝다. 관람객이 이 비용을 ‘전시 관람료’가 아니라 ‘제주에서만 해볼 수 있는 경험’으로 받아들이느냐가 흥행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제주 관광은 자연경관 중심 수요에 강점을 갖고 있지만, 날씨와 계절, 항공 운임, 숙박비에 따라 체감 만족도가 크게 달라진다. 원피스 워터 미디어 전시는 유명 IP가 지역의 물리적 공간을 다시 해석할 때 어떤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성공 여부는 단기간 방문객 수뿐 아니라, 제주가 글로벌 콘텐츠 팬덤을 반복적으로 불러들이는 체류형 목적지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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