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세가 넘어서도 피아노 앞을 떠나지 않았던 일본 피아니스트 무로이 마야코가 세상을 떠났다.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 보도를 인용한 연합뉴스에 따르면 무로이는 지난 5일 0시 16분께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105세다. 그는 일본 클래식 음악계에서 긴 활동 기간과 꾸준한 연습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무로이는 1921년 4월 도쿄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1941년 도쿄음악학교, 현재의 도쿄예술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이후 1945년 도쿄 히비야공회당에서 일본 교향악단 공연에 참여하며 공식 무대에 섰다. 이 악단은 훗날 NHK 교향악단의 전신으로 평가된다.
전후 일본 클래식 무대와 함께한 연주자
그의 경력은 전후 일본 클래식 음악이 제도와 관객층을 넓혀 가던 시기와 겹친다. 무로이는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수련하며 유럽 음악 전통을 익혔고, 이후 일본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가운데 한 명으로 활동했다. 특히 베토벤 작품 해석에 강점을 보인 연주자로 소개돼 왔다.
1955년 공개된 영화 ‘여기에 샘이 있다’에도 실명으로 등장했다. 이 작품은 일본 오케스트라 초창기 분위기를 다룬 영화로 알려져 있다. 무로이의 출연은 그가 단순히 독주자로만 활동한 것이 아니라, 일본 음악계의 제도적 성장 과정에도 얼굴을 남긴 연주자였음을 보여준다.

무로이의 이름이 다시 크게 주목받은 이유는 고령에도 이어진 현역 활동이었다. 그는 80세를 넘긴 뒤에도 일본 각지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100세가 된 2021년에는 닛케이홀에서 백수 기념 특별 콘서트를 열었다. 같은 해 인터뷰에서는 하루 네 시간씩 연습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매일의 반복을 예술로 만든 삶
그가 남긴 인상은 화려한 경력만이 아니다. 고령에도 생활 리듬을 유지하고, 직접 블로그를 업데이트하며, 잡지 연재를 이어간 점도 주목된다. 음악 잡지 ‘월간 쇼팽’에는 최근 호까지 글을 실은 것으로 전해졌다. 디지털 도구 사용에도 적극적이었다는 점은 원로 예술가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를 넘어서는 부분이다.
저술 활동도 꾸준했다. 1971년 ‘피아니스트가 되는 길’을 낸 것을 비롯해, 2018년에는 97세 현역 피아니스트의 습관과 태도를 담은 책을 펴냈다. 그의 글과 인터뷰는 재능보다 반복, 무대보다 일상, 젊음보다 지속성을 강조하는 메시지로 읽힌다.
무로이는 평생 독신으로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사적인 삶보다 음악과 글, 무대 위 활동이 대중에게 더 많이 기억됐다. 그가 100세 이후에도 연습을 이어갔다는 사실은 장수 예술가의 미담을 넘어, 전문성이 어떻게 긴 시간 유지되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한 세기 활동이 남긴 의미
무로이의 별세는 일본 클래식 음악계가 전후 세대의 중요한 증인을 떠나보낸 사건이기도 하다. 그는 음악 교육기관, 오케스트라, 영화, 출판, 공연장을 오가며 한 세기 가까운 변화를 몸으로 통과했다. 그의 경력에는 일본이 서양 클래식 음악을 받아들이고 대중화해 온 과정이 함께 담겨 있다.
대중이 기억하는 무로이의 모습은 결국 피아노 앞에 앉은 원로 연주자다. 나이를 이유로 활동을 접기보다, 가능한 범위에서 연습과 표현을 계속한 태도는 예술계 밖의 독자에게도 울림을 준다. 105세로 삶을 마친 그의 이력은 한 음악가의 부고를 넘어, 오랫동안 지속한 직업적 성실함의 기록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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