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증시가 급격한 변동성에 노출된 가운데 코스피의 하단을 둘러싼 논의가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반도체 업종의 고점 통과 우려, 중국 인공지능 모델의 추격, 미국과 이란을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 등 여러 악재가 한꺼번에 반영됐지만, 시장 일각에서는 현재 가격대가 이미 상당 부분을 선반영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병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주식시장에서 거론되는 악재를 감안해도 코스피가 6,000선 아래로 내려가기 어렵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선행 주가순자산비율 기준으로 1.3배에서 1.4배 수준이 적정한 하단이며, 이를 지수로 환산하면 코스피 6,000포인트 안팎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피크아웃 논란과 수급 변수
이번 조정의 중심에는 반도체 업종이 있다. AI 투자 확대를 배경으로 국내 증시를 이끌어 온 반도체주가 최근 조정을 받으면서 고점 통과 논란이 커졌고, 중국발 AI 모델 경쟁도 투자자들의 경계심을 높였다. 김 연구원은 반도체 수출 증가율이 내년에는 둔화될 수 있다고 보면서도, 수출 금액의 절대 규모가 과거와 다른 수준으로 올라섰다는 점을 강조했다.
수급 측면에서는 외국인 매도 압력이 완화될 가능성이 거론됐다. 코스피 반도체 업종의 외국인 지분율이 낮은 수준으로 내려오면서 추가적인 대규모 순매도 여지가 줄어들 수 있다는 판단이다. 최근 변동성 확대에는 실물 경기 요인뿐 아니라 레버리지 상품과 헤지 거래가 맞물린 수급 요인이 크게 작동했다는 해석도 제시됐다.

금융당국이 단일종목 레버리지·인버스 상품 관련 규제를 강화한 점도 시장 안정 변수로 꼽힌다. 레버리지 상품 규모가 줄어들면 유동성공급자의 현물 매수와 선물 헤지 규모도 함께 축소돼 변동성 확대 압력이 낮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규제 효과가 곧바로 지수 반등으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고, 투자심리 회복에는 실적 확인이 필요하다.
빅테크 실적이 가를 회복 속도
향후 증시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관문은 다음 주 예정된 주요 빅테크 기업들의 실적 발표다. 김 연구원은 빅테크 매출 증가율이 견고하게 확인되면 코스피가 바닥권에 오래 머물기보다 점진적으로 회복할 수 있다고 봤다. 특히 AI 인프라 설비투자가 유지되는지 여부는 국내 반도체 업종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변수다.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알파벳, 아마존, 오라클 등 하이퍼스케일러의 AI 인프라 투자가 큰 폭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은 반도체 수요에 대한 낙관론을 뒷받침한다. 시장이 우려하는 설비투자 축소가 실제 실적 발표에서 확인되지 않는다면, 최근의 피크아웃 논란은 과도한 경계로 평가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반등이 진행되더라도 상단에서는 차익실현 압력이 나타날 수 있다. 김 연구원은 고점 부근에서 매수한 투자자들이 남아 있어 코스피가 8,000선 중반을 넘어서면 매물이 출회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단기 회복 가능성과 별개로, 시장이 다시 상승 추세를 확인하려면 이익 전망과 수급 안정이 함께 필요하다는 뜻이다.

금리 환경도 업종별 차별화를 키울 요인이다. 높은 금리를 견딜 수 있는 금융과 IT 업종은 상대적으로 견조할 수 있지만, 건설과 소매 등 금리 부담에 민감한 업종은 부진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결국 투자자들은 지수 전체의 방향뿐 아니라 이익 체력과 금리 민감도를 함께 살펴야 하는 국면에 들어섰다.
현재의 증시 조정은 단일 악재보다 여러 위험이 동시에 반영된 결과에 가깝다. 반도체 업황, AI 투자, 지정학적 긴장, 레버리지 상품 규제까지 변수가 많지만, 시장의 관심은 이제 실제 기업 실적으로 이동하고 있다. 다음 주 빅테크 실적이 AI 투자 지속성을 확인시켜 준다면 국내 증시의 하단론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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