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일부 중고등학교에서 학교폭력 상담 내용과 학생생활기록부 관리가 부실하게 이뤄진 정황이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다. 학교폭력 피해를 호소한 학생이 교사와 여러 차례 상담했지만, 정작 그 내용이 기록으로 남지 않아 심의 과정에서 피해 입증 자료로 활용되지 못한 사례가 확인됐다. 학생부 세부 특기사항을 여러 학생에게 똑같이 적은 중복 기재 사례도 1천 건 넘게 적발됐다.
SBS 보도에 따르면 감사원은 서울 강남·서초와 강서양천 교육지원청에서 심의된 학교폭력 인정 사례 155건을 표본으로 점검했다. 그 결과 143건, 비율로는 92%에서 상담 기록이 아예 없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 관련 자료가 제출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폭력 사안에서 초기 상담은 피해 사실, 반복성, 주변 정황을 확인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는데, 기록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상담은 있었지만 증거는 없었다
보도에 소개된 사례에서 한 고교생은 다른 학생들이 자신의 책상에 쓰레기를 버리는 등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호소했고, 신고 전 교사와 다섯 차례 상담했다. 그러나 상담 내용이 기록되거나 보관되지 않아 학폭위가 피해를 확인하는 데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이 감사원의 판단이다. 피해 학생 입장에서는 학교에 도움을 요청한 과정 자체가 제도 안에서 사라진 셈이다.
학교폭력 절차에서 기록은 단순한 행정 문서가 아니다. 피해 학생의 진술이 언제,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확인하는 근거이고, 학교와 교육지원청이 사안을 일관되게 판단하도록 돕는 장치다. 기록이 없으면 심의는 당사자 진술과 일부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피해 학생은 자신이 이미 호소했던 내용을 다시 증명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

감사원은 학교폭력 상담 기록의 최소 보관 기간인 2년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봤다. 이에 따라 상담 내용이 학폭위에 제출돼 피해 입증 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기록·관리 방안을 마련하라고 서울시교육감에게 통보했다. 이는 학교 현장에서 상담을 사적 조언이나 임시 대응으로 끝내지 말고, 필요한 경우 공식 절차와 연결되는 자료로 남겨야 한다는 취지다.
교사 부담과 피해 보호 사이의 균형
다만 교원 단체들은 현실적 어려움도 제기하고 있다. 학부모가 가해와 피해 구분을 교사가 하는 것이 정당한지 문제 삼는 경우가 있고, 상담 기록이 향후 분쟁의 자료가 되면 교사에게 과도한 책임이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 학교폭력 사안은 관계가 복잡하고, 초기 상담 단계에서는 사실관계가 완전히 확인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기록을 남기지 않는 방식이 해법이 되기는 어렵다. 핵심은 교사가 법적 판단을 대신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어떤 내용을 언제 호소했고 학교가 어떤 조치를 안내했는지를 객관적으로 남기는 것이다. 기록 양식, 보관 기준, 열람 권한, 개인정보 보호 원칙을 명확히 하면 피해 보호와 교원 보호를 함께 설계할 수 있다.
이번 감사에서는 학생생활기록부 문제도 함께 드러났다. 감사원은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서울 239개 고등학교에서 교원 803명이 여러 학생의 세부 특기사항을 같은 내용으로 중복 기재한 사례 1천106건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전년도 문구를 다른 해에 다시 쓰거나, 하루에 반 전체 학생에게 동일한 종합 의견을 입력한 사례도 있었다.

학생부는 대학 입시와 학생 평가에 직접 영향을 주는 공적 기록이다. 동일 문구가 반복되면 학생 개별 활동과 성장을 보여줘야 할 기록의 신뢰가 떨어진다. 특히 입시에서 학생부의 문장 하나가 비교 자료로 활용될 수 있는 만큼, 기록의 정확성과 개별성은 교육 행정의 기본에 가깝다.
이번 지적은 학교 현장에 기록 업무를 더 늘리라는 단순한 요구로만 볼 수 없다. 상담과 학생부 모두 학생의 권리와 진로에 영향을 미치는 공식 절차다. 기록이 부실하면 피해 구제는 약해지고, 평가는 공정성을 잃는다. 교육 당국은 현장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표준 시스템을 마련하되, 학생에게 중요한 기록이 사라지거나 복사되는 관행은 분명히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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