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실리콘밸리의 대형 벤처캐피탈과 접점을 넓히며 한국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 확대를 주요 경제 의제로 띄웠다. 이재명 대통령은 25일 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글로벌 벤처투자사와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들을 만나 한국 스타트업 투자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단순한 해외 일정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 정부 설명이 이어지면서, 후속 투자와 제도 개선으로 연결될지가 관건으로 떠올랐다.
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은 이번 만남을 두고 삼성과 SK 같은 대기업의 다음 세대를 키우기 위한 결의의 자리라고 평가했다. 김 실장은 참석한 벤처캐피탈들이 애플, 엔비디아, 구글, 메타, 오픈AI 등 세계적 기술 기업의 초기 성장 단계에 관여했던 투자자들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의 설명은 한국 경제의 다음 성장 축을 기존 제조 대기업 중심에서 혁신 스타트업 중심으로 넓히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글로벌 VC와 국민연금이 만난 배경
이번 회동에는 앤드리슨 호로위츠, 제너럴 캐털리스트, 세콰이어 캐피털, 라이트스피드 벤처 파트너스, 뉴 엔터프라이즈 어소시에이츠, 코슬라 벤처스 등 실리콘밸리의 대표적 투자사들이 참여했다. 이들 6개 벤처캐피탈의 운용자산은 약 3130억 달러로 소개됐다. 여기에 세계적 연기금으로 꼽히는 국민연금공단이 함께하면서, 민간 투자 네트워크와 장기 자금 운용 역량을 연결하려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국민연금은 해외 대체투자와 장기 수익률 제고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스타트업 투자는 변동성이 크지만, 유망 기업을 초기에 발굴하면 장기적으로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영역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국민연금의 글로벌 네트워크 확대가 한국 스타트업의 해외 투자 유치와 시장 진출에 긍정적 신호를 줄 수 있다. 다만 연금 자금의 공공성과 수익성 원칙 사이에서 투자 기준을 분명히 하는 일도 중요하다.

차세대 대기업은 어떻게 나올까
김 실장은 한국이 더 이상 개발도상국 방식의 정부 주도 경제개발계획만으로 다음 세대 대기업을 만들 수 없다고 짚었다. 과거에는 대규모 산업정책과 제조 기반 투자가 성장의 중심이었다면, 현재의 빅테크 기업들은 창업 초기부터 벤처자본, 인재, 글로벌 시장 접근성을 결합해 빠르게 성장하는 방식으로 세계 무대에 올랐다. 한국도 이 흐름에 맞는 투자 생태계를 갖춰야 한다는 취지다.
실리콘밸리 투자사들이 한국 시장을 보는 시선도 달라지고 있다. 일부 투자사는 이미 한국 기업에 투자해 성과를 냈고, 한국 사무소 개설 등 지역 거점을 강화하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인공지능, 반도체, 콘텐츠, 방산, 로보틱스처럼 한국이 경쟁력을 가진 분야가 글로벌 투자자의 관심사와 맞물릴 경우, 국내 스타트업에는 더 큰 기회가 열릴 수 있다.
다만 회동 자체가 곧바로 투자 확대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벤처캐피탈은 성장 가능성뿐 아니라 지배구조, 회수 시장, 규제 예측 가능성, 창업자 네트워크, 인재 이동성 등을 종합적으로 본다. 한국 스타트업이 해외 자본을 더 많이 끌어들이려면 외국인 투자 절차, 스톡옵션 제도, 인수합병 시장, 기술 규제 등 여러 조건이 함께 개선돼야 한다.
사진 이후의 실행이 관건
이번 만남의 실질적 성과는 후속 투자 프로그램과 공동 펀드, 창업자 교류, 해외 진출 지원 체계가 얼마나 구체화되는지에 달려 있다. 특히 국민연금이 글로벌 벤처캐피탈과 어떤 방식으로 협력하고, 그 과정에서 국내 스타트업에 어떤 기회가 제공되는지가 중요하다. 단기 성과를 서두르기보다 장기적 투자 원칙과 창업 생태계의 자율성을 함께 살피는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 경제는 반도체와 제조 대기업의 경쟁력에 여전히 크게 기대고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 전환과 공급망 재편이 빨라지는 상황에서 새로운 성장 기업을 키우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에 가깝다. 실리콘밸리 VC와의 회동이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창업자가 국내에서 시작해 세계 시장으로 나갈 수 있는 경로를 넓히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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