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삼성증권에서 발생한 이른바 ‘유령주식’ 배당 사고와 관련해 회사가 국민연금공단에 18억여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확정됐다. 잘못 입력된 대규모 주식이 직원 계좌에 들어가고 일부가 시장에서 매도된 사건에 대해 법원은 증권사의 내부통제 책임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는 국민연금이 삼성증권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단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2일 밝혔다. 이에 따라 삼성증권은 국민연금에 18억6600만여원을 지급하게 됐다. 소송이 제기된 지 약 7년 만에 나온 최종 결론이다.
대법원은 삼성증권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면서 책임 범위를 전체 손해액의 50%로 제한한 원심에 법리 오해가 없다고 판단했다. 국민연금과 삼성증권 양측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면서 1심과 2심에서 이어진 책임 판단이 그대로 유지됐다.
주당 1000원 대신 1000주 입력
사건은 2018년 4월 우리사주 조합원에게 배당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담당 직원이 주당 1000원을 입력해야 할 항목에 1000주를 입력하면서 실제 발행될 수 없는 규모의 주식이 직원 계좌에 표시됐다. 잘못 배정된 수량은 28억1295만여주로 당시 발행주식 총수의 30배를 넘었다.
일부 직원은 계좌에 들어온 주식을 장중에 매도했다. 그 결과 삼성증권 주가는 전 거래일 종가보다 한때 11.68% 내린 3만5150원까지 떨어졌다. 실재하지 않는 주식이 전산상 생성돼 거래된 초유의 상황은 금융회사 전산 시스템과 임직원 통제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국민연금은 주가 급락으로 손해를 봤다며 2019년 6월 약 299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의 핵심은 잘못된 배당 입력과 직원의 매도, 주가 하락 사이의 책임을 어디까지 인정할지, 증권사가 사고를 막을 통제 장치를 충분히 갖췄는지였다.

법원, 내부통제 미비 책임 인정
1심과 2심은 삼성증권이 배당 업무의 위험을 막을 내부통제 기준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고 봤다. 입력된 수량이 발행주식 총수를 크게 초과했는데도 거래 가능한 상태로 반영된 점은 단순한 개인 실수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시스템상 문제라는 취지다.
다만 재판부는 배당 담당자의 의도하지 않은 실수와 일부 직원의 사적 매도가 함께 작용했다는 점 등을 고려해 삼성증권의 책임을 전체 손해액의 절반으로 제한했다. 국민연금이 청구한 금액 전부가 아니라 법원이 인정한 손해와 책임 비율에 따라 배상액이 정해졌다.
대법원이 원심을 확정하면서 금융회사는 직원 개인의 입력 실수라도 대규모 시장 사고로 번질 가능성을 예상하고 차단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원칙이 다시 확인됐다. 특히 발행 가능 수량이나 정상 범위를 벗어난 값은 자동으로 거부하거나 추가 승인을 받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다.
전산 통제와 사람의 판단 함께 필요
금융 업무는 빠른 처리와 정확성을 동시에 요구한다. 배당과 주문, 결제처럼 시장에 직접 영향을 주는 작업은 한 번의 입력이 다수 계좌와 거래 시스템으로 즉시 확산될 수 있다. 따라서 입력자와 승인자를 분리하고, 비정상적인 수량과 금액을 사전에 탐지하는 다중 검증이 중요하다.
시스템 통제만으로 모든 위험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고 당시 계좌에 표시된 비정상적인 주식을 일부 직원이 매도했다는 사실은 임직원 윤리와 접근 권한 관리, 사고 발생 직후의 거래 중지 절차도 함께 작동해야 함을 보여준다. 기술적 방어와 조직 문화가 동시에 필요하다.
기관투자가의 손해 산정도 이번 소송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시장 가격은 여러 요인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특정 사고가 손실에 미친 영향을 구분해야 한다. 법원은 증거와 거래 내역을 토대로 인정 가능한 손해 범위를 정하고 다른 요인과 피해자의 거래 판단을 함께 고려해 책임 비율을 조정한다.

금융시장 신뢰에 남긴 교훈
증권사는 고객 자산과 거래 기록을 정확히 관리한다는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된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주식이 거래 화면에 나타나 매도까지 이뤄진 사건은 시스템의 기본 전제를 흔들었다. 사고 후 제도 개선이 이뤄졌더라도 통제 장치가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작동하는지 점검해야 한다.
이번 확정판결은 개별 손해배상 분쟁을 마무리하는 동시에 금융회사의 운영 위험에 대한 책임 기준을 보여준다. 단순 실수라는 이유만으로 회사 책임이 사라지지는 않으며, 반대로 여러 원인이 결합한 경우에는 인과관계와 기여도에 따라 배상 범위가 제한될 수 있다.
앞으로 금융사들은 대량 배당과 주문을 처리하는 시스템의 한도, 경고, 승인 기록을 정기적으로 시험할 필요가 있다. 모의 사고 훈련과 신속한 거래 차단, 감독기관 보고 절차도 실제 상황에서 작동하도록 준비돼야 한다. 사고가 발생한 뒤 배상하는 것보다 시장에 잘못된 정보가 들어가지 않도록 예방하는 편이 비용과 신뢰 측면에서 훨씬 중요하다.
약 7년에 걸친 소송은 유령주식 사고의 민사 책임을 최종적으로 정리했다. 이번 판결이 남긴 핵심은 금융회사의 내부통제가 문서상 규정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전산 설계와 승인 절차, 임직원의 책임 있는 행동이 함께 작동해야 비슷한 사고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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