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8년 황해도 옹진지구 전투에서 공을 세운 참전용사 최홍제 씨가 서훈 결정 후 78년 만에 실물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육군 제22보병사단은 지난 9일 사단장 주관으로 전수식을 열고 최 씨에게 훈장을 전달했다고 11일 밝혔다. 오랜 시간 기록으로만 남아 있던 공적이 국방부와 육군의 확인 사업을 통해 다시 주인을 찾았다.
이번 훈장은 최 씨가 받은 세 번째 화랑무공훈장이다. 그는 정부 수립 직후의 옹진지구 전투부터 6·25전쟁 당시 포항지구와 고성 351고지 전투까지 여러 전선에서 복무했다. 서로 다른 시기의 공적 세 건이 각각 인정됐지만, 옹진지구 전투 훈장은 실물 전달이 장기간 이뤄지지 않았다.
1946년 부사관으로 시작한 군 생활
최 씨는 1946년 10월 독립연대 1대대 부사관으로 군 생활을 시작했다. 1948년부터는 황해도 옹진지구 전투에 참여했다. 당시 옹진반도는 38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면서 크고 작은 충돌이 이어지던 지역이었다.
그는 이 전투에서 세운 공적을 인정받아 화랑무공훈장 서훈 대상이 됐다. 하지만 실제 훈장을 받지 못한 채 70년 넘는 시간이 흘렀다. 서훈 기록은 남아 있었지만 전쟁과 혼란, 행정 전달의 한계 등으로 훈장이 당사자에게 닿지 못한 사례 가운데 하나였다.
전환점은 국방부와 육군본부가 추진한 ‘6·25 무공훈장 찾아주기 사업’이었다. 군은 과거 서훈 기록을 확인하고 수훈자나 유가족을 찾아 훈장을 전달해왔다. 이 과정에서 최 씨의 옹진지구 전투 서훈 사실도 확인됐고, 78년 만에 전수식이 마련됐다.

포항과 351고지에서도 세운 전공
최 씨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8월 장교로 임관했다. 이후 3사단 소속으로 포항지구 전투에 참가했다. 이때 세운 공적을 인정받아 같은 해 12월 30일 첫 번째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두 번째 훈장은 1952년 고성 351고지 전투에서의 공적으로 받았다. 당시 그는 5사단 27연대 수색 중대장으로 복무했다. 351고지는 현재 휴전선 이북에 있으며, 제22보병사단 장병들이 경계 작전을 수행하면서 바라보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번에 전달된 옹진지구 전투 훈장까지 더하면 최 씨의 화랑무공훈장은 모두 세 개가 된다. 세 차례 수훈 기록은 정부 수립 전후의 군사 충돌과 6·25전쟁 초기, 휴전 협상이 진행되던 고지전 시기까지 이어진 그의 복무 이력을 보여준다.
군가로 전우들의 넋 기린 전수식
전수식은 국민의례, 무공훈장 수여, 최 씨의 주요 참전 이력 소개, 소감 발표 순으로 진행됐다. 군악 중대는 6·25전쟁 당시 널리 불린 ‘육군가’와 진중가요 ‘전우야 잘 자라’를 연주했다. 최 씨는 또렷한 목소리로 군가를 함께 부르며 먼저 떠난 전우들을 기렸다.
최 씨는 후배 장병들의 따뜻한 환대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수십 년이 지났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자신이 이 땅을 지켰다는 자부심으로 살아왔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장병들이 뒤를 이어 나라를 굳건히 지켜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강봉일 제22보병사단장은 부대가 매일 휴전선 이북의 351고지를 바라보며 경계 작전에 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곳에서 직접 전투한 선배에게 훈장을 전하게 돼 영광이라며, 최북단 전선에서 선배 전우들이 지킨 땅을 계속 지키겠다고 밝혔다.
늦게 도착한 훈장이 남긴 의미
훈장 전수는 78년이라는 긴 지연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국가가 남아 있는 기록을 확인하고 공적을 공식적으로 다시 인정했다는 의미가 있다. 당사자가 생존해 직접 훈장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도 특별하다. 기록과 실물, 기억이 한 자리에서 연결된 셈이다.
무공훈장 찾아주기 사업은 과거의 서훈 문서만 정리하는 행정 절차에 그치지 않는다. 수훈자와 가족에게 국가의 약속을 뒤늦게나마 이행하고, 전투의 구체적인 역사와 개인의 경험을 현재 세대에 전달하는 과정이다. 최 씨의 사례는 오래된 기록을 끝까지 추적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특히 이번 행사가 최 씨가 수색 중대장으로 싸웠던 351고지를 마주하는 부대에서 열렸다는 점은 과거와 현재의 연결을 더했다. 전투에 참가한 선배와 현재 경계 임무를 맡은 후배 장병이 같은 장소의 의미를 공유했다. 군악대의 연주와 참전 이력 소개도 훈장 수여를 개인의 영예뿐 아니라 공동의 기억으로 확장했다.
최 씨가 받은 세 번째 화랑무공훈장은 옹진지구, 포항지구, 351고지로 이어지는 복무의 기록을 완성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서훈 사실을 확인하고 훈장을 전달하는 일은 참전자의 공적을 국가 기록 속에 정확히 남기는 작업이다. 이번 전수식은 한 명의 참전용사에게 돌아간 영예이자,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훈장을 계속 확인해야 한다는 과제를 함께 보여줬다.
옹진지구 전투는 6·25전쟁 발발 이전의 긴장과 충돌을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최 씨의 서훈 이력이 확인되면서 개인의 공적뿐 아니라 당시 부대와 전투의 역사도 다시 조명받게 됐다. 남아 있는 군 문서와 증언을 교차 확인하는 작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워지는 만큼, 관련 자료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수훈자를 신속히 찾는 노력도 지속적으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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