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의장성명이 2년 연속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언급하자 북한이 즉각 반발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총무부장은 조선중앙통신 담화를 통해 해당 표현을 강하게 비난하며 북한의 핵 능력이 계속 갱신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사회는 대화 재개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이행을 촉구했지만, 북한은 핵 보유국 지위를 되돌릴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하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SBS 보도에 따르면 지난 23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ARF 회의 의장성명은 25일 공개됐다. 성명은 최근 한반도 상황 전개에 우려를 표명하고, 비핵화된 한반도에서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실현하기 위해 관련 당사국 간 평화적 대화를 재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 북한의 지속적인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개발이 지역 평화와 안정을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성명에는 지난해에 이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이 들어갔다. 2024년까지 쓰였던 CVID, 즉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보다 수위가 낮아진 표현이다. 외교가에서는 북핵 문제 진전을 위한 관계 개선과 대화 여지를 고려한 문구라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북한은 표현 완화에도 비핵화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북한은 핵 보유 지위 불가역성 강조
김여정 부장은 ARF 의장성명을 두고 미국이 선창하는 비핵화 주장에 동조한 적대적 태도라고 비난했다. 그는 ‘조선반도 비핵화’에 집착하는 것은 전략적 사고와 논리의 실패라고 주장하면서, 외부 세력의 희망이나 수사로 현 상황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핵 억제력을 국가주권의 궁극적 방패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다시 강조한 것이다.

이 발언은 북한이 비핵화 협상의 출발점 자체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겠다는 메시지에 가깝다. 국제사회가 제재 결의 이행과 대화 재개를 동시에 언급해도, 북한은 핵 능력 강화와 보유국 지위 고착화를 협상 이전의 기정사실로 만들려 한다. 이런 태도는 향후 남북, 북미, 다자 외교가 재개되더라도 의제 설정 단계부터 충돌이 클 수 있음을 시사한다.
ARF는 북한이 참여해온 몇 안 되는 역내 다자안보 협의체로 평가돼 왔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회의에 불참했다. 성명은 ARF와 같은 아세안 주도 플랫폼이 관련 당사국 간 대화를 위한 유리한 분위기 조성에 건설적 역할을 할 준비가 있다고 밝혔지만, 북한의 불참은 그런 통로의 실효성이 약해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대화 재개 문구의 현실적 한계
성명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대목은 ‘대화 지속’이 아니라 ‘대화 재개’가 강조됐다는 점이다. 이는 남북 간 소통과 북핵 관련 대화가 사실상 멈춰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국제사회가 외교적 노력을 우선 과제로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지만, 대화를 시작하려면 의제와 조건, 상호 조치에 대한 최소한의 접점이 필요하다.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비핵화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긴장 관리를 위한 대화 채널을 복원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표현 수위를 조정하는 것만으로 북한의 태도를 바꾸기는 어렵다. 동시에 제재와 압박만으로도 군사적 긴장과 핵 능력 고도화를 막기 어렵다는 점에서, 외교적 공간을 어떻게 확보할지가 관건이다.

이번 ARF 성명과 북한의 반발은 한반도 외교의 현주소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국제사회는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적 대화 재개를 같은 문장 안에 담았지만, 북한은 핵 보유 지위의 불가역성을 앞세웠다. 앞으로의 변수는 관련국들이 이 간극을 줄일 현실적 제안을 마련할 수 있는지, 그리고 북한이 다자 무대 복귀를 선택할 유인이 생길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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