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시와 성적표가 청소년 서사의 익숙한 배경으로 반복되는 가운데, 영화 산양들은 그 틀에서 일부러 한 걸음 비켜선다. 수능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네 명의 소녀는 진학 조사표를 비워 둔 학생들이다. 학교의 시선에서 이들은 목표가 불분명하고 관리가 필요한 존재지만, 영화는 그 공백을 실패가 아니라 다른 길을 찾을 가능성으로 바라본다.
유재욱 감독은 22일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작품을 외톨이 소녀 4인방의 모험극으로 설명했다. 이야기는 인혜, 서희, 정애, 수민이 학교 사육장의 동물들이 살처분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구출에 나서면서 시작된다. 이들은 숲속에 동물과 자신을 위한 안식처를 만들며, 학교와 입시가 정해 놓은 질서 밖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동물 구출로 시작되는 청춘 모험
영화 속 네 소녀는 같은 반도 아니고 성격도 다르다. 동물을 돌보는 일에 마음을 둔 인혜, 생존주의 성향을 지닌 서희, 순진하고 발랄한 정애, 까칠하지만 든든한 수민은 처음부터 단단한 팀이 아니다. 그러나 동물을 구해야 한다는 목표가 생기면서 서로의 다른 결을 받아들이고, 각자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간다.
이 설정은 청소년 영화에서 자주 보이는 경쟁과 성장의 문법을 살짝 바꾼다. 네 인물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협력하지 않고, 어른들이 보기에 쓸모없거나 위험해 보이는 일을 위해 함께 움직인다. 동물 구출이라는 사건은 귀엽고 발랄한 모험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제도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한 청소년들이 스스로 머물 곳을 만들려는 욕구가 담겨 있다.

유 감독은 자연과 야생의 공간에서 스스로 살아보는 꿈이 작품의 출발점이었다고 밝혔다. 특히 생존주의자인 아내에게서 영감을 받았고, 그 특징은 극 중 서희라는 인물에 반영됐다. 서희는 나이프 사용법에 관심을 보이는 등 엉뚱한 면모를 지녔지만, 영화는 이를 단순한 기행이 아니라 불확실한 세계를 자기 힘으로 건너려는 태도로 읽게 한다.
한국영화에서 드문 소녀 모험극
산양들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한국영화에서 상대적으로 드문 소녀 모험극을 표방한다는 점이다. 남성 청소년들의 우정과 일탈, 혹은 입시 현실을 다룬 작품은 많았지만, 여고생들이 동물과 숲, 생존과 안식처를 매개로 모험을 벌이는 이야기는 흔치 않았다. 유 감독 역시 한국에 소녀 모험극이 많지 않다고 보고, 이 장르를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제목인 산양들도 중요한 은유다. 감독은 산양보호센터에서 절벽을 뛰어다니는 산양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설명했다.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소녀들이 사실은 어디든 갈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가 제목에 겹쳐진다. 입시의 선로를 벗어난 인물들을 불안한 낙오자가 아니라, 험한 지형에서도 자기 발로 길을 내는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배우들의 앙상블도 작품의 주요 관전 포인트로 제시됐다. 박혜진, 이승연, 박효은, 최수인은 서로 다른 성격의 인물들을 맡아 웃음과 리듬을 만든다. 유 감독은 배우들을 믿고 갔다며 현장에서 만들어진 합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배우들 역시 촬영장을 안식처처럼 느꼈다고 말하며 관객도 극장에서 그런 감각을 경험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29일 개봉,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
산양들은 유재욱 감독이 라임크라임 이후 선보이는 두 번째 장편이다. 전작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주목받은 뒤 나온 신작인 만큼, 독립영화 관객에게는 감독의 다음 행보를 확인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번 영화는 오는 29일 개봉해 여름 극장가에서 관객을 만난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정해진 목표를 적지 못한 청소년에게는 정말 아무 길도 없는가. 산양들은 그 답을 교실 밖 숲과 동물, 서툰 우정 속에서 찾는다. 네 소녀가 만든 작은 안식처는 완벽한 해답이라기보다, 자기 삶의 방향을 아직 정하지 못한 이들에게도 움직일 힘이 있다는 선언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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