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앤디 버넘 영국 총리가 취임 첫날 존 힐리 전 국방장관을 재무장관에 임명하며 새 내각의 윤곽을 드러냈다. 힐리 장관은 전임 키어 스타머 정부에서 국방비 증액 문제를 둘러싸고 공개적으로 각을 세운 뒤 물러났던 인물이다. 한 달 만의 내각 복귀이자 정부 내 실질적 2인자로 평가되는 재무장관 발탁이라는 점에서 이번 인선은 영국 노동당 정부의 권력 재편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으로 받아들여진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버넘 총리는 20일 현지시간 취임한 뒤 첫 주요 인선으로 힐리 장관을 재무부 수장에 앉혔다. 영국 정치에서 부총리직은 공석이거나 의전적 성격이 강한 경우가 많아, 예산과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재무장관이 내각 운영의 핵심 축을 맡는다. 따라서 이번 결정은 단순한 보은 인사라기보다 새 정부가 재정과 안보 의제를 함께 다루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국방비 갈등 뒤 재무장관으로 복귀
힐리 장관은 스타머 정부에서 국방장관을 맡았지만, 2030년까지 국방비를 국내총생산의 3%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약속이 충분히 이행되지 않는다고 비판하며 사임했다. 당시 정부의 국방 투자 계획이 약속에 못 미친다고 보고 스타머 전 총리의 리더십을 강하게 문제 삼았다. 특히 재정 여력을 관리하던 레이철 리브스 전 재무장관과도 충돌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 힐리 장관이 리브스 전 장관의 후임 격으로 재무부를 맡게 된 점은 정치적 반전이다. 국방 예산 확대를 주장해 온 인물이 전체 재정 운영을 맡게 되면서, 영국의 안보 투자와 복지·산업·물가 대응 사이의 균형이 새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버넘 총리는 당내 신망과 정책 경험을 동시에 갖춘 베테랑을 전면에 세워 초기 내각의 안정감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힐리 장관은 1997년부터 하원의원을 지낸 노동당 중진이다. 과거 노동당 정부에서 재무부 차관을 지냈고, 야당 시절에는 주택과 보건 분야 예비내각 직책도 맡았다. 2020년 이후에는 국방 분야에 집중하며 노동당의 안보 정책을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 잡았다. 이런 경력은 재무부 운영에서도 예산 배분의 정치적 설득력을 높이는 자산이 될 수 있다.
외무·내무 인선도 노동당 균형에 초점
버넘 총리는 외무장관에 에드 밀리밴드 전 에너지안보 장관을 임명했다. 밀리밴드는 2010년 노동당 대표 경선에서 버넘을 누르고 당 대표가 됐던 인물로, 이번 발탁은 과거 경쟁 구도를 넘어 당내 폭넓은 연합을 만들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대외 정책과 기후·에너지 의제 경험을 가진 인물을 외교 전면에 배치한 것도 눈에 띈다.
샤바나 마무드 내무장관은 유임됐다. 그는 스타머 정부에서 국경 및 이민 단속 강화를 추진했던 인물로, 노동당 안에서도 상대적으로 오른쪽에 있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버넘 총리가 내무장관을 교체하지 않은 것은 이민·치안 분야에서 급격한 노선 변경보다 정책 연속성을 택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다만 당내 진보 성향 의원들과 시민단체의 압박은 계속될 수 있다.
루이즈 헤이그 전 교통장관도 랭커스터공국 장관으로 복귀했다. 그는 과거 업무용 휴대전화 도난 신고와 관련한 허위 진술 문제가 뒤늦게 드러나 사임한 바 있다. 이런 인선은 경험 있는 인물을 다시 활용하려는 현실적 선택이라는 평가와 함께, 새 정부가 도덕성 논란을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한 시험대가 될 수 있다.

새 정부 초반 과제는 재정 신뢰 회복
버넘 내각의 첫 인선은 노동당 내부의 상처를 봉합하면서도 재정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힐리 장관은 국방비 확대론자로 알려져 있지만, 재무장관이 된 이상 특정 부처의 요구만 대변할 수 없다. 성장 둔화, 공공서비스 재원, 안보 환경 변화가 맞물린 상황에서 각 분야 예산의 우선순위를 조정해야 한다.
이번 인선의 성패는 버넘 총리가 당내 경쟁자와 비판자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정부 운영에 끌어안느냐에 달려 있다. 힐리·밀리밴드·마무드로 이어지는 첫 내각 라인업은 경험과 균형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서로 다른 정책 성향을 조율해야 하는 부담도 크다. 영국 새 정부가 출범 초기 안정감을 확보할지, 아니면 재정과 안보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커질지는 향후 예산안과 외교·이민 정책 발표에서 드러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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