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의 군비 경쟁은 전차와 전투기 같은 전통적 플랫폼 중심에서 드론과 대드론 체계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값싼 무인기가 정찰, 표적 획득, 정밀 타격, 방공망 교란까지 맡을 수 있다는 사실이 반복적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유럽 각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는 이 변화를 일시적 전술 유행이 아니라 미래 안보 환경을 바꿀 구조적 변화로 받아들이고 있다.
매일경제가 인용한 CNBC 보도에 따르면 최근 유럽에서는 드론 관련 대규모 투자 발표가 잇따랐다. 나토는 향후 5년간 대드론 능력에 400억달러 이상을 투입하는 계획을 내놨고, 영국은 드론과 대드론 체계 구축에 50억파운드 규모의 예산을 배정했다. 독일도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드론 5만대를 조달할 예정이다. 숫자만 보면 방어 장비 보강처럼 보이지만, 실제 의미는 유럽 방위 전략의 우선순위 재편에 가깝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확인한 비용 대비 효과
드론이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비용 대비 효과다. 우크라이나는 장거리 드론을 활용해 러시아의 정유시설과 군수시설을 공격했고, 전선에서는 소형 드론이 병력 이동과 포병 사격 보정, 장갑차 타격에 사용됐다. 중동 전장에서도 이란산 샤헤드 드론은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의 무인기가 고가 방공망에 부담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줬다. 전통적 무기 체계가 여전히 중요하지만, 드론은 기존 전력의 빈틈을 메우는 보조 수단을 넘어 독자적 전장 변수가 됐다.
이 변화는 방어 개념도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미사일과 항공기를 막는 방공망이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작고 빠르게 접근하는 다수의 무인기를 탐지하고 식별하며 무력화하는 능력이 필요해졌다. 레이더, 전파 탐지, 전자전, 요격 드론, 지향성 에너지 무기 등 여러 기술이 함께 묶여야 한다. 나토가 대드론 능력에 별도 대규모 투자를 배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전장은 네트워크 경쟁으로 이동
드론 전력의 본질은 기체 자체에만 있지 않다. 앞으로의 전장은 드론과 위성, 지상 센서, 보안 통신망, 인공지능 분석 시스템이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네트워크 경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여러 무기가 각각 따로 움직이는 방식보다, 탐지와 판단과 타격이 짧은 시간 안에 연결되는 체계가 우위를 만든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투자 수혜도 드론 제조사에만 머물지 않는다. 전장관리 소프트웨어, 군집비행 운영체계, 전파방해를 견디는 통신 장비, 위성정보 분석, 센서와 전자전 기업까지 관련 산업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독일 방산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표적 추적과 다중 드론 운용 기술을 개발하고, 방산 AI 기업의 기업가치가 급등하는 흐름은 이런 확산을 보여준다.
유럽 방산 지출 확대와 산업 재편
유럽의 국방비 증가는 드론 경쟁을 더 밀어 올리는 배경이다. 보도에 따르면 유럽의 핵심 국방지출은 2019년 이후 두 배로 늘었고, 2030년에는 약 8000억유로에 이를 전망이다. 방산 기술 투자도 2021년 2억유로에서 지난해 26억유로로 증가했다. 러시아 위협에 대응해야 한다는 정치적 압박과 미국 안보 의존을 줄여야 한다는 전략적 요구가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다만 드론 중심 군비 경쟁에는 과제도 적지 않다. 빠른 조달은 품질 관리와 표준화 문제를 낳을 수 있고, 각국이 서로 다른 장비와 통신 체계를 도입하면 나토 차원의 공동 운용성이 떨어질 수 있다. 민간 기술을 군사 영역으로 빠르게 끌어오는 과정에서 수출 통제, 데이터 보안, 윤리 기준도 논쟁거리가 된다. 드론이 값싸다는 장점 역시 대규모 소모전을 전제로 할 때는 지속적 생산 능력과 공급망 확보라는 부담으로 바뀐다.

그럼에도 유럽의 방향은 뚜렷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현대전에서 드론을 많이 보유하는 것만큼, 이를 탐지하고 막고 연결해 운용하는 체계가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앞으로 유럽의 군비 경쟁은 더 큰 무기를 얼마나 많이 갖추느냐를 넘어, 작은 무인기와 데이터를 얼마나 빠르고 안정적으로 결합하느냐의 경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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