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치료의 출발점이 ‘환자가 병원에 도착한 순간’에서 ‘상황이 발생한 직후’로 앞당겨지고 있다. 춘천성심병원은 2023년부터 운영 중인 원격 협진 플랫폼을 통해 지역 의료기관이 촬영한 검사 영상과 환자 상태를 실시간으로 공유받고, 전문의가 응급수술 필요성과 전원 여부를 더 이른 단계에서 함께 판단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 플랫폼의 효과는 실제 사례에서도 확인됐다. 2024년 4월 동해시에서 60대 A씨가 의식 저하 증상을 보였고, 지역 의료기관에서 중증 뇌출혈이 의심돼 응급수술이 필요한 상황임이 파악됐다. A씨는 춘천성심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까지 헬기 이송을 포함한 연계 절차를 거쳤는데, 병원에서는 환자가 도착하기 전부터 응급실·신경외과·수술실·중환자실 의료진이 치료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고 한다. 이후 A씨는 병원에서 코일 색전술(코일링) 등 치료를 받고 회복했다.
의료 취약지에서 ‘환자-전문의-수술팀’을 연결하는 방식
강원 지역은 산악 지형과 권역 간 긴 이동 거리로 인해 중증 응급환자의 경우 대학병원까지 1~2시간 이동이 필요한 상황이 적지 않다고 전해진다. 특히 뇌출혈·뇌경색·뇌동맥류 파열 같은 중증 뇌혈관질환은 신속한 진단과 치료 여부가 생존율과 후유증을 좌우해 ‘골든타임’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현실의 이동 부담은 이를 어렵게 만든다.
춘천성심병원의 원격 협진 플랫폼은 이런 문제를 “환자가 어디에 있든, 전문의가 의사결정 과정에 먼저 참여하도록” 해결하는 데 초점을 둔다. 플랫폼은 지역 의료기관과 춘천성심병원 전문의가 실시간으로 환자 정보를 공유하고 진료 방향을 논의할 수 있도록 만든 협진 시스템이다. 병원 측 설명에 따르면 협진은 대개 지역 의료기관 응급실에서 시작된다. 지역에서 CT 촬영 등 필요한 검사를 진행한 뒤, 촬영 영상과 환자 상태가 플랫폼을 통해 즉시 전달되고, 전문의가 응급수술 필요 여부와 전원 여부를 판별한다.
‘도착 후 치료’에서 ‘도착 전 치료’로…시간 단축의 의미
원격 협진의 핵심은 환자가 병원에 도착한 뒤 치료가 시작되는 방식을 줄이는 데 있다. 기존에는 대학병원 도착 이후 진료가 본격화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플랫폼을 이용하면 응급상황 발생 직후부터 전문의가 판단에 참여하면서 진단 및 치료 결정 시간을 앞당길 수 있다고 병원 측은 설명한다.
A씨 사례에서 수술 준비가 가능했던 배경도 여기에 있다. 지역에서 협진이 진행되는 동안 춘천성심병원에서는 이미 응급실-수술실-중환자실 등 치료 전반에 필요한 준비를 마쳤다. 전원이 결정된 뒤에는 대학병원 응급실과 수술실, 중환자실 의료진이 실제 처치와 준비에 곧바로 돌입하는 구조다. 병원은 이를 통해 환자에게는 시간 지연을 줄이고, 의료진에게는 불확실성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
지역 병의원 ‘자문’이 아니라 ‘원팀 운영’으로
또 하나의 변화는 협력의 성격이다. 춘천성심병원은 플랫폼이 단순히 환자를 전원하는 단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의료기관과 권역응급의료센터가 하나의 체계처럼 움직이는 ‘원팀’ 운영을 돕는다고 강조한다. 특히 뇌혈관질환 환자는 출혈 위치·범위, 뇌압 상승 여부, 혈전제거술·혈전용해술 적용 가능성 등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전문의가 지역 단계에서부터 이런 판단을 지원하면, 전원 자체가 빨라지는 것뿐 아니라 “어떤 치료가 가능한지”가 더 빨리 정해져 치료 연속성이 높아진다.
전진평 춘천성심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원격 협진을 의료취약지역 환자와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잇는 디지털 응급의료 안전망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응급의료 목표는 단순 이송이 아니라,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병원은 플랫폼 운영 이후 지역 의료기관과 권역응급의료센터의 협력이 이전보다 활발해졌다고 성과로 꼽았다.
무엇을 더 보완해야 할까: 확장과 표준화의 과제
이번 사례는 원격 협진이 중증 응급상황에서 실질적인 시간 단축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시스템이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참여 기관 확대, 정보 공유의 신속성, 그리고 현장에서 통일된 운영 절차가 뒷받침돼야 한다. 춘천성심병원은 도내 어디에서든 적절한 전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협력체계를 넓히고, 응급환자 진료 과정에 필요한 정보 공유와 의사결정이 더 신속하게 이뤄지도록 시스템을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앞으로 주목할 지점은 디지털 응급의료가 단발성 도입을 넘어 지속 가능한 네트워크로 정착하는지다. 지역 병의원, 권역응급의료센터, 119 구급대, 지자체 간 역할을 어떻게 더 촘촘히 연결하느냐가 성패를 가를 수 있다. 또한 협진 대상 질환(뇌혈관질환 중심에서 다른 응급 영역으로의 확장)과, 전문의 판단에 필요한 검사·전송 체계의 표준화 여부도 관건이다.
골든타임을 둘러싼 경쟁은 결국 “얼마나 빨리 의사결정이 이뤄지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춘천성심병원의 원격 협진 플랫폼은 그 의사결정을 ‘병원 도착 이후’가 아니라 ‘상황 발생 직후’로 앞당기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응급의료 체계의 다음 단계로 평가받을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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