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제조업계에서 40년 넘게 유지돼 온 주 35시간 근무제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주요 기업 경영진은 높은 임금과 에너지 비용, 중국 업체와의 경쟁 심화로 산업 경쟁력이 약해졌다며 임금 인상 없이 주 40시간 근무로 돌아가자고 제안했다. 노동계는 근무시간 연장이 같은 생산량을 더 적은 인원으로 처리하게 만들어 고용 감소를 부를 수 있다고 반박한다.
논쟁의 중심에는 메르세데스-벤츠와 공구 제조업체 스틸 등 독일을 대표하는 제조기업들이 있다. 이들 기업의 경영진은 공개 논의를 요청하며 현재의 근로시간 체계가 국제 경쟁 환경과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마르틴 브루더뮐러 메르세데스-벤츠 감독이사회 의장은 독일의 노동비용이 주요 경쟁국보다 지나치게 높고 과거의 생산성 우위도 약해졌다고 진단했다.
EU 평균보다 47% 높은 노동비용
독일 제조업의 시간당 노동비용은 49.5유로로 집계됐다. 이는 유럽연합 평균인 33.7유로보다 47% 높고 헝가리의 15.6유로와 비교하면 세 배가 넘는 수준이다. 독일 노동자는 동유럽 노동자보다 높은 생산성을 보이지만 노동비용이 생산성보다 빠르게 오르면서 제품 한 단위를 만드는 데 드는 인건비 부담도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에는 높은 노동비용을 감수할 만한 장점이 분명했다. 정치적 안정과 잘 갖춰진 기반시설, 숙련된 노동력, 가까운 거리에 모인 산업단지가 생산과 공급망 운영의 효율을 높였다. 그러나 국가 간 비용 차이가 세 배에서 네 배까지 벌어지면서 이런 강점만으로 격차를 상쇄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 기업 측의 판단이다.

제조업 위기는 생산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독일 산업생산은 2017년 말 고점을 찍은 뒤 15% 넘게 줄었다. 에너지 가격 상승과 중국과의 경쟁, 미국의 관세, 자동차 산업의 전기차 전환이 동시에 영향을 미쳤다. 서로 다른 충격이 겹치면서 기업은 단순한 경기 부진이 아니라 사업 구조 전반의 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고용 조정은 생산 감소보다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독일 제조업 종사자는 현재 약 650만명으로 추산되며 매달 1만2000명에서 1만5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컨설팅업체 롤랜드버거의 마커스 베레트 글로벌 총괄은 앞으로 제조업 종사자가 500만명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40년에 걸쳐 자리 잡은 주 35시간제
독일 제조업의 주 35시간 근무제는 1984년 서독 금속 노동자들의 대규모 파업을 계기로 도입됐다. 이후 약 10년에 걸친 협상과 제도 정비를 통해 정착했다. 근로시간 단축은 노동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일자리를 더 많은 사람에게 나누자는 사회적 합의의 결과였기 때문에 단순한 기업 내부 규칙을 넘어 역사적 상징성이 크다.
주 40시간 복귀를 지지하는 경제학자들은 근로시간을 늘리되 임금을 그대로 유지하면 시간당 비용을 낮출 수 있다고 본다. 단기적으로 생산량을 늘리고 공장 가동률을 높이면 경쟁력을 지키고 결과적으로 일자리도 보호할 수 있다는 논리다. 경기 변화에 맞춰 임시직을 활용하는 기존 방식만으로는 장기적인 구조 위기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진단도 뒤따른다.
노동조합은 다른 계산을 내놓는다. 기업은 이미 수요와 경영상황에 따라 노동시간을 늘리거나 줄일 수 있는 유연성을 갖고 있으며, 모든 노동자의 근무시간을 일괄적으로 늘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주 40시간제가 적용되면 기업이 동일한 생산량을 더 적은 노동자로 달성할 수 있어 오히려 인력 감축을 촉진할 수 있다는 우려다.

생산성 해법 둘러싼 시각차
근로시간과 생산성은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공장 가동시간이 늘어도 수요가 부족하거나 설비가 낡고 에너지 비용이 높다면 생산량 증가가 수익 개선으로 곧바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숙련된 인력이 부족한 분야에서는 기존 노동자의 근무시간 확대가 주문 대응력을 높이는 현실적인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업종과 기업별 사정도 다르다. 자동차 산업은 전기차 전환과 중국 시장 경쟁에 직면했고 화학과 금속 산업은 에너지 비용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수출 주문이 충분한 기업과 수요가 줄어든 기업에 같은 근로시간을 적용하면 효과가 엇갈릴 수 있다. 노사가 일률적인 제도 변경보다 기업별 협약과 한시적 조정안을 검토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논쟁은 노동자의 실질소득 문제와도 연결된다. 임금을 늘리지 않고 근무시간만 다섯 시간 연장하면 시간당 보상은 낮아진다. 기업은 일자리 유지와 경쟁력 회복을 강조하지만 노동자는 생활시간 감소와 업무 부담 확대를 감수해야 한다. 제도 변경이 지속되려면 생산성 개선의 성과를 임금과 고용 안정에 어떻게 배분할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제조업 구조개혁의 시험대
독일이 직면한 문제는 근로시간 하나만 바꿔 해결하기 어렵다. 에너지 공급과 규제, 투자 속도, 디지털화, 숙련인력 양성, 전기차 공급망 같은 요소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주 40시간 복귀는 비용을 낮추는 선택지 가운데 하나지만 장기 경쟁력은 기술 투자와 고부가가치 생산 능력에 더 크게 좌우될 수 있다.
주 35시간제 개편 논의는 독일이 산업 경쟁력과 노동 보호 사이에서 어떤 새 균형을 선택할지 보여주는 시험대가 됐다. 기업의 위기감과 고용 감소 우려는 모두 실제 지표에 근거하고 있다. 향후 논의에서는 근로시간 연장이 생산과 수출을 얼마나 개선할 수 있는지, 노동자의 부담과 일자리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구체적인 업종별 자료로 검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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