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레슬링의 국제 무대 도전을 상징해 온 장창선 전 태릉선수촌장이 20일 별세했다. 향년 84세. 장 전 촌장은 선수 시절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에서 한국 레슬링의 가능성을 증명했고, 은퇴 뒤에는 지도자와 체육 행정가로 활동하며 후배 선수들의 길을 넓힌 인물로 평가받는다.
고인은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당시 한국 스포츠는 종목별 국제 경쟁력이 제한적이었고, 레슬링 역시 세계 강호들과의 격차를 좁혀가던 시기였다. 장 전 촌장의 메달은 특정 개인의 성취를 넘어 한국 레슬링이 세계 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세계선수권 우승으로 남긴 첫 기록
장 전 촌장이 남긴 가장 굵직한 기록은 1966년 미국 톨리도 세계레슬링선수권대회 우승이다. 그는 이 대회에서 정상에 오르며 한국 선수 최초로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를 제패한 기록을 세웠다. 올림픽 메달에 이어 세계선수권 우승까지 달성하면서 한국 레슬링은 국제 대회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의 성과는 이후 한국 레슬링이 올림픽 효자 종목으로 자리 잡는 과정의 초기 토대가 됐다. 선수층이 두껍지 않았던 시절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과 겨뤄 결과를 냈다는 점에서, 고인의 기록은 후배들에게 실질적인 목표와 기준이 됐다. 한국 스포츠사에서도 ‘첫 세계 정상’이라는 상징성은 작지 않다.

장 전 촌장은 선수 생활 이후에도 레슬링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대표팀 지도자로 후배 선수들을 이끌었고, 대한레슬링협회 부회장으로도 활동했다. 경기장 안에서 쌓은 경험을 훈련 시스템과 선수 관리, 종목 행정으로 확장한 셈이다. 한국 레슬링이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세대 간 경험 전수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그의 역할은 컸다.
태릉선수촌과 체육 행정으로 이어진 발자취
고인은 태릉선수촌장도 지냈다. 태릉선수촌은 오랜 기간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중심 훈련 공간이었다. 선수촌장은 특정 종목을 넘어 국가대표 훈련 환경과 선수 지원 체계를 관리해야 하는 자리다. 장 전 촌장이 이 역할을 맡았다는 것은 그가 레슬링계 내부를 넘어 한국 체육계 전체에서 신뢰를 받았음을 보여준다.
국가도 그의 공로를 여러 차례 인정했다. 장 전 촌장은 1970년 국민훈장 목련장, 1985년 체육훈장 백마장을 받았다. 2014년에는 대한민국 스포츠영웅으로 선정됐다. 이는 선수 개인의 기록뿐 아니라 한국 스포츠 발전에 남긴 장기적 기여를 기리는 의미가 담겨 있다.
대한체육회는 장 전 촌장의 장례를 회장으로 엄수하기로 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유진 씨와 딸 지연 씨, 사위 박용서 씨 등이 있다. 빈소는 인천 인하대병원에 마련됐고, 발인은 22일 오전 9시 30분으로 전해졌다.

장 전 촌장의 별세는 한 시대를 연 스포츠인의 퇴장을 뜻한다. 그는 한국 레슬링이 국제 무대에서 스스로의 가능성을 확인하던 시기에 성과를 냈고, 이후 후배들이 그 길을 이어갈 수 있도록 현장과 행정에서 역할을 했다. 한국 스포츠계가 그를 개척자로 기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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