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산하 ‘투표용지 부족사태 진상규명위원회’가 19일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두고 “선거관리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이라며 선관위 수뇌부에 대한 수사 의뢰 권고를 내렸다. 진상규명위는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을 포함한 총 12명에 대해 수사기관에 조사를 요청할 것을 권고하는 한편, 관련 실무자 6명에 대해서도 징계를 권고했다고 밝혔다.
“인쇄 축소는 졸속…보고·지휘 체계도 작동 안 돼”
진상규명위는 이번 조사 결과에서 투표용지 인쇄와 대응 과정 전반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보도자료 및 브리핑에 따르면, 선관위는 유권자 기준으로 투표용지 인쇄 예산을 110% 수준으로 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선거인수의 50%를 기준으로 인쇄를 축소하는 지침이 시행됐다. 위원회는 이 같은 결정이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에 가깝다고 비판하며, 특히 인쇄매수 축소가 중앙위원회 논의나 의결 없이 사무총장 전결로 졸속 결정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투표용지 부족이 실제로 우려되기 시작한 시점(6월 3일 선거 당일 낮 12시 이전)에도 불구하고 위기상황 대응과 보고 체계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게 진상규명위의 핵심 문제 제기다. 진상규명위는 “상급위원회에 대한 신속한 보고체계가 전혀 작동되지 않았고, 상급위원회의 지휘권도 전혀 발동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추가 송부 ‘140곳 중 91곳 사용’…투표중단도 발생
위원회가 제시한 수치도 논란의 규모를 보여준다. 진상규명위에 따르면 전국 1만4천288개 투표소 중 추가 투표용지를 송부받은 곳은 140개였다. 이 가운데 실제로 추가 송부된 투표용지를 사용한 투표소는 91개였고, 잠시라도 투표중단이 발생한 곳은 26개로 집계됐다.
진상규명위는 추가 투표용지 배송 과정에서의 절차적 문제도 함께 거론했다. 추가 물량을 배송할 때 지퍼백에 담아 봉인 없이 송부하는 방식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 사회복무요원 등이 투입되는 등 전반적으로 “총체적 부실”이 있었다는 것이다.
보고 없이 투표시간 연장…개표도 ‘종료 전’ 시작
단순히 물량 부족 자체를 넘어, 사건이 발생했을 때의 의사결정 방식과 보고 체계가 무너졌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진상규명위는 서울시선관위가 투표 시간 연장을 중앙선관위 보고나 논의 없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송파구선관위에서는 투표가 종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표를 개시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밝혔다.
이 같은 정황은 선거 관리 절차에서 요구되는 단계별 통제·점검이 제때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정치권과 법·감사 기관의 추가 점검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노태악 등 12명 수사 의뢰…실무자 6명 징계 권고
진상규명위는 책임 소재에 따라 수사 의뢰 권고 대상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수사 의뢰 권고 대상은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을 비롯해 위철환 상임위원, 허철훈 전 사무총장, 강동완 사무차장, 윤재수 전 선거정책실장 등 총 12명이다. 여기에 서울시선관위 위원장·상임위원·사무처장·선거과장, 송파구선관위 위원장·사무국장·선거담당관도 포함됐다고 위원회는 밝혔다.
또한 진상규명위는 선관위와 서울시선관위, 송파구선관위 직원들 가운데 사태와 관련 있는 실무자 총 6명에 대한 징계도 권고했다. 진상규명위는 이번 사태가 “선관위 해체에 가까운 대대적 혁신”이 필요할 정도로 시스템 자체의 문제를 드러냈다고 강조했다.
재발 방지책·제도 개선안…“인쇄 축소 기준 상향·상근제 도입”
진상규명위는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제안도 내놨다. 핵심 권고안으로는 ▲투표용지 인쇄 축소 비율을 70% 이상으로 상향 ▲무번호 투표용지 최소화 ▲중앙선관위 사무처 전결 범위 축소 ▲중앙선관위원장 상근제 도입 ▲현장대응요령 중심의 매뉴얼 정비 ▲투표소별 투표율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감사원 직무감찰 범위에 선관위 포함 등이 제시됐다.
아울러 선거제도 차원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도 드러났다. 진상규명위는 사전투표 제도 존폐, 개표결과 전산 입력 과정의 오류, 출구조사 결과발표 시기 조정 등과 관련해 개선 방안을 도출하고,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한 대국민 공론의 장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검찰·국정조사 관문 남아…‘재선거’는 법원 판단 후
진상규명위의 수사 의뢰 권고는 향후 검찰 수사 및 관련 절차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위원장 조현욱 위원장은 이번 권고가 “선거 관리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이라는 책임 판단에 기반한다고 설명했으며, 재선거를 권고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공직선거법상 재선거 요건과 절차가 정해져 있고, 선거 소청 등 법적 절차를 통해 법원 판단이 내려진 뒤 재선거 여부를 판단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이제 남은 관전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수사 의뢰 대상 12명이 어떤 혐의 범주에서 어떤 조사 범위를 받게 될지다. 둘째, 진상규명위가 제시한 혁신·제도 개선안이 실제로 선관위 운영 구조와 매뉴얼, 통제 시스템에 얼마나 반영될지 여부다. 선관위의 후속 대응과 정치권의 국정조사 일정이 발표되는 과정에서, 이번 사태가 ‘일회성 행정 사고’인지 ‘시스템 전반의 구조적 결함’이었는지에 대한 공방이 한층 가열될 전망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