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과 미국이 6월 2일 서울에서 ‘핵추진 잠수함(핵잠)’ 도입 및 원자력 협력 확대를 위한 첫 후속 협의를 시작했다. 한미 양국이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 공동합의의 이행을 구체화하는 협상 단계에 들어간 가운데, 협의 의제의 중심에는 핵잠 연료(저농축우라늄) 안정 공급과 엄격한 비확산·통제·검증 체계 구축이 놓여 있다.
정상 합의의 ‘이행 협상’으로 전환
SBS에 따르면 이날 협의는 한미 양국 범정부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개최된 ‘발족(Kick-off) 회의’로,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 안보 분야 후속 조치의 구체 이행을 논의하기 위한 첫 자리다. 당초 후속 협의는 올해 초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미국 측의 대미 투자·경제 관련 쟁점과 중동을 둘러싼 국제정세(미국-이란 간 긴장 등)가 맞물리며 약 6개월가량 지연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측은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이 수석대표를 맡았으며 외교부·국가안보실·국방부·기후에너지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부·원자력안전위원회 등 관계부처가 함께했다. 미국 측은 앨리슨 후커 미 국무부 정무차관이 이끌었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수석국장,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 국무부 군비통제·비확산 부차관보, 국가핵안보청(NNSA) 부청장 등 주요 인사가 참석했다.
협의 의제: 핵잠 도입과 ‘원자력 협력 확대’
이번 협의에서 핵심 의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한국형 핵추진잠수함 도입 문제이며, 다른 하나는 원자력 협력 확대다. 두 의제는 연료 공급 방식과 맞물릴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또 조선업 협력은 별도 의제로 다뤄질 수 있으나, 핵잠 구축·운영 계획과도 연결돼 협상 과정에서 함께 논의될 여지가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핵잠 연료’가 협의의 가장 민감한 지점이다. 정부는 지난달 ‘장보고 N 사업’을 공식화하며 2030년대 중반 첫 핵추진잠수함 진수, 2030년대 후반 전력화를 목표로 제시했다.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위협에 대응해 장기간 은밀하게 작전할 전략자산을 확보하겠다는 구상 속에서, 한국은 군사 목적과 비확산 우려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설계할지가 관건이 된다.
저농축우라늄 공급과 ‘통제·검증’이 관건
정부는 핵무기급 고농축우라늄이 아닌, 농축도 20% 미만의 저농축우라늄을 핵잠 연료로 사용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핵확산 우려를 낮추면서도 장기간 잠항이 가능한 추진 체계를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연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문제’와 ‘통제하는 문제’는 별개의 난제로 남는다. 한국은 현재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라 미국의 동의 없이 우라늄을 독자적으로 농축할 수 없고,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도 제한돼 있다. 원전 연료로 쓰이는 저농축우라늄 역시 전량 수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핵잠 연료로 쓰일 미국산 저농축우라늄의 공급 안정성과, 나아가 농축·재처리 권한의 확대 여부는 미국 행정부·의회 및 비확산 진영을 설득해야 하는 과제로 연결된다.
SBS는 이 과정에서 ‘핵물질이 핵무기 개발 등 다른 목적으로 전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장할 핵물질 통제 관리 체계가 핵심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원전의 경우 국제사찰단 접근과 감시가 상대적으로 용이하지만, 핵추진잠수함은 출항 후 위치·동선·작전 시간이 군사기밀로 관리되는 만큼 추적·사용 내역 확인·사용후핵연료 관리 등 법적·기술적 세부 쟁점이 더 크게 부각될 수 있다.
협정 구조의 한계도 다시 맞닿아
협정 문제 역시 협의의 중요한 축이다. 현재 한미 원자력협정은 기본적으로 민간 원자력 협력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는 원자력협정 개정과 맞물릴 수밖에 없다. 반면 핵잠 연료는 군사적 성격을 띠어 기존 협정 체계와 충돌하는 부분이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 측은 에너지부와 NNSA 등 관련 기관을 통해 핵연료 반출입 절차, 사용 범위, 사후 관리, 사용후핵연료 보관 방식 등에 대해 엄격한 통제 장치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정부는 핵추진잠수함 도입이 핵무장과 무관하며, NPT 체제 및 국제 비확산 원칙 준수 범위 안에서 추진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협상 논리를 세울 것으로 보인다.
향후 일정과 전망
이날 회의는 공개 질의응답에서도 미국 측이 목표나 협의 범위에 대해 즉답을 피하는 등, 민감한 의제 특성을 드러냈다. SBS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협의 전후로 공개 발언을 최소화하고, 회의 석상에서의 모두 발언도 비공개하는 방향으로 한국 측과 사전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는 한미가 핵잠 연료의 공급·통제·검증을 어떻게 설계할지에 대한 ‘작동 가능한 합의’가 핵심이 될 전망이다. 특히 핵물질 추적과 사용 내역 확인, 사용후핵연료 관리 등 구체 장치가 합의의 속도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양측이 어느 시점에 구체적인 로드맵(협정 개정 필요성 포함)과 연료 운용 통제안을 제시할지 여부가, 정상 합의가 실제 이행으로 얼마나 빠르게 연결되는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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