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해군 관계자가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도입 논의에 대해 단순한 국격의 상징이 아니라 분명한 안보 목적과 작전상 필요가 먼저 제시돼야 한다고 밝혔다. 핵추진 잠수함은 장기간 잠항과 넓은 작전 반경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건조와 운용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 한국이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관련 협력을 추진하는 가운데, 미국 측이 임무와 운용 역량을 핵심 판단 기준으로 제시한 것이다.
미 해군 관계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취재진과 만나 한국이 핵잠을 가져야 할 타당한 이유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단지 국제적 위상 때문에 구매한다면 잘못된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 해군도 추가 입장에서 군사 자산의 요구사항은 국가 안보상의 필요와 작전 운용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했다.
핵잠이 필요한 임무부터 정해야
핵추진 잠수함은 원자로에서 동력을 얻기 때문에 재래식 잠수함보다 오랫동안 수중에 머물며 고속으로 이동할 수 있다. 먼 해역에서 정보 수집과 감시, 수상함 호위, 적 잠수함 추적 같은 임무를 지속하는 데 유리하다. 그러나 한반도 주변의 비교적 좁은 해역에서만 운용한다면 기존 잠수함과 비교한 비용 대비 효과를 더 엄격히 따져야 한다.
미 해군 관계자는 과거 미국 해군참모총장이 한국 잠수함이 인근 해역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핵잠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취지로 말한 사실을 소개했다. 이는 도입 여부를 함정의 성능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실제 작전 구역과 임무를 연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북 억제에 집중할지, 더 넓은 인도태평양 해역에서 동맹 작전에 참여할지도 논의가 필요하다.

작전 범위가 넓어지면 외교와 전략적 부담도 커진다.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주변국은 한국의 수중 전력 변화를 자국 안보와 연결해 해석할 수 있다. 정부는 어떤 위협에 대응하고 어떤 상황에서 운용할지 국민과 국회에 설명해야 한다. 군사적 필요와 지역 안정, 동맹의 역할 분담을 함께 검토하는 절차가 중요하다.
훈련과 유지보수가 함정보다 어려운 과제
미 해군은 첨단 수중 전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광범위한 전문 훈련과 유지·보수 기반, 높은 작전 숙련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핵잠은 원자로 안전과 방사선 관리, 수중 소음 억제, 무기와 센서 통합 등 복잡한 체계를 갖는다. 함정을 한 척 확보하는 데서 끝나는 사업이 아니라 승조원 양성과 정비시설, 규제기관과 비상대응체계를 수십 년간 유지해야 하는 국가적 사업이다.
건조 비용 외에도 연료 주기와 정비, 기지 보안, 폐기와 해체 비용을 포함한 전체 생애주기 비용을 계산해야 한다. 숙련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높은 성능을 보유하고도 실제 출동률이 낮아질 수 있다. 한국이 독자 건조를 추진하더라도 원자로 기술과 핵연료, 안전 인증, 관련 국제협정에서 미국과의 긴밀한 협의가 필요하다.
북한 잠수함 전력의 변화도 변수다. 미 해군 관계자는 러시아가 북한을 지원하는 상황을 우려하면서도 잠수함 보유 숫자가 곧 실질적인 작전 능력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평가했다. 성능이 높은 함정을 다수 운용한다면 위협이 커질 수 있지만, 현재 심각하게 우려할 징후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위협 평가는 확인된 능력과 훈련 수준, 배치 동향에 근거해야 한다.
한국 조선업과 미국 함정 정비 협력
미 해군 관계자는 한국 조선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했다. 미국은 필요한 속도로 함정을 건조하고 정비할 능력이 부족하며, 한국의 숙련 인력과 체계적인 공정이 역량 강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봤다. 핵잠 논의와 별개로 상선과 군함 건조, 유지보수 분야에서 한미 산업 협력의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다만 미국 함정을 한국이나 일본의 조선소에서 정비하는 데는 미국 법률의 제약이 있다. 법이 바뀌지 않으면 해외 조선소가 수행할 수 있는 작업 범위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미 해군의 설명이다. 협력을 확대하려면 보안 기준과 기술 이전, 공급망 관리, 미국 내 일자리 문제를 조정하고 의회의 입법도 뒷받침돼야 한다.
한국 입장에서는 핵잠 도입과 조선 협력을 하나의 거래처럼 단순화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함정 정비 협력은 양국 해군의 가동률과 산업 기반을 높이는 과제이고, 핵잠 보유는 안보전략과 비확산, 재정 부담을 포괄하는 별도 결정이다. 각 사안의 비용과 이익, 법적 조건을 투명하게 제시해야 현실적인 합의가 가능하다.
핵연료와 원자로 기술을 다루는 과정에서는 국제 비확산 의무와 안전 규제, 사고 책임 체계를 명확히 하는 작업도 필수적이다. 장기간 운용 중 발생할 수 있는 기술 위험과 비용 변화도 독립적인 검증을 거쳐야 한다.
향후 논의의 출발점은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이다. 목표 임무가 분명해지면 필요한 잠항 기간과 속도, 무장, 함대 규모를 산정하고 재래식 잠수함이나 무인 수중체계 같은 대안과 비교할 수 있다. 이후에야 건조 방식과 비용 분담, 기술 협력의 범위를 정할 수 있다. 미 해군의 발언은 한국의 핵잠 구상을 반대하거나 승인하는 선언보다, 상징을 넘어 작전 개념과 지속 가능한 운용 능력을 먼저 입증하라는 주문에 가깝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