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영화와 시리즈에서 양성평등과 문화다양성의 가치를 살펴보는 콘텐츠 축제 ‘벡델데이 2026’이 시리즈 부문 선정작 10편을 발표했다. 동시대 여성의 현실과 생존, 관계와 내면을 여러 장르로 풀어낸 작품들이 고르게 이름을 올렸다.
‘벡델초이스 10’에는 ‘다음생은 없으니까’, ‘당신이 죽였다’, ‘레이디 두아’,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아너: 그녀들의 법정’, ‘애마’, ‘언더커버 미쓰홍’, ‘유미의 세포들 3’, ‘은중과 상연’, ‘자백의 대가’가 선정됐다.
선정작은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케이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웹을 통해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공개된 시리즈 드라마 102편 가운데 뽑혔다. 플랫폼의 경계를 두지 않고 한 해 동안 시청자와 만난 작품을 폭넓게 검토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현실과 장르를 넘나든 여성 서사
올해 목록에는 여성들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선택과 생존 문제를 다룬 현실적인 이야기부터 법정극, 범죄극, 시대극 등 장르성이 강한 작품까지 포함됐다. 여성 캐릭터가 주변 인물에 머무르지 않고 사건과 감정의 흐름을 이끄는 작품들이 선정의 중심에 놓였다.
세대와 시대적 배경도 하나로 한정되지 않았다. 각 작품은 서로 다른 나이와 환경에 놓인 인물을 통해 일, 사랑, 우정, 책임, 사회적 편견을 바라본다. 이런 구성은 여성 중심 서사가 특정한 소재나 정서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 형식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임대형 프로그래머는 올해 여성 중심 서사가 양적으로 확대됐다는 점을 주목할 대목으로 꼽았다. 세대와 장르, 시대를 가로지르며 여성의 삶을 각기 다른 결로 포착한 작품들이 선정됐다는 설명이다. 목록 전체를 하나의 흐름으로 보면 한국 시리즈의 소재와 인물 구성이 넓어지고 있다는 평가로 읽힌다.

김고은 주연작 세 편 동시에 선정
이번 발표에서 특히 눈길을 끈 부분은 배우 김고은이 주연한 ‘유미의 세포들 3’, ‘은중과 상연’, ‘자백의 대가’가 모두 포함됐다는 점이다. 한 배우의 작품 세 편이 같은 해 목록에 오르면서 서로 다른 여성 캐릭터를 구현한 연기 폭도 함께 조명받게 됐다.
세 작품은 이야기의 분위기와 인물 관계, 갈등 방식이 서로 다르다. 같은 배우가 출연했다는 공통점만으로 묶기보다 각 작품이 여성 인물의 욕망과 선택을 어떤 방식으로 구체화했는지 비교해 볼 수 있다. 캐릭터의 차이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연기와 서사의 결합이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된다.
동시에 이번 결과는 여성 중심 작품이 일회성 기획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시즌과 장르에서 지속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한 배우의 성과뿐 아니라 기획과 집필, 연출, 제작 전반에서 다양한 여성 인물을 계속 발굴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는지가 장기적인 과제다.
벡델 기준을 국내 환경에 맞게 확장
벡델데이는 미국 만화가 앨리슨 벡델의 이름에서 출발한 ‘벡델 테스트’를 국내 콘텐츠 환경에 맞춰 확장한 일곱 가지 기준으로 작품과 창작자를 선정한다. 원래 테스트는 작품 속 여성 인물의 존재와 대화를 단순한 질문으로 점검하며 대중문화의 성별 재현 문제를 환기해 왔다.
그러나 하나의 테스트가 작품의 완성도나 다양성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국내 행사는 단순 통과 여부를 넘어 서사의 중심성, 인물의 구체성, 창작 과정의 다양성 등을 함께 살펴보는 방식으로 기준을 넓혔다. 작품을 줄 세우기보다 제작 현장과 관객이 재현 방식을 논의할 계기를 만드는 데 의미가 있다.
선정 목록은 시청자에게 지난 1년의 시리즈를 다시 발견할 안내 역할도 한다. 이미 본 작품은 다른 관점에서 돌아볼 수 있고, 놓친 작품은 여성 캐릭터와 관계의 묘사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비교하며 선택할 수 있다. 플랫폼별 인기 순위와는 다른 큐레이션이라는 점에서 별도의 가치가 있다.

8월 말 서울에서 행사
‘벡델데이 2026’은 8월 29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의 연남장에서 열린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이 주최와 주관을 맡고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가 후원한다. 발표된 선정작을 중심으로 작품과 창작 환경에 대한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목록은 여성 중심 서사의 양적 확대를 확인하는 동시에 질적 다양성을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게 한다. 등장인물의 수만 늘리는 것을 넘어 각 인물이 고유한 목표와 갈등, 관계를 갖도록 설계됐는지, 장르 안에서 주도적인 선택을 하는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앞으로는 선정된 열 편의 성과가 차기 제작과 투자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시청자의 선택과 산업의 지원이 맞물려 다양한 이야기의 지속 가능성을 높일 때, 한 해의 선정은 단순한 명단을 넘어 제작 환경의 변화를 촉진하는 신호가 될 수 있다.
벡델초이스 10은 한국 시리즈가 여성의 삶을 다루는 방식이 넓어졌음을 보여주는 중간 점검표다. 작품마다 성취와 한계는 다르지만 서로 다른 세대와 장르의 인물을 한 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행사에서 이어질 대화가 다음 작품의 새로운 시선으로 연결될지 주목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