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중앙집권형 정보기관 창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북한을 둘러싼 안보 위협이 커졌다는 판단 아래 경찰, 방위성, 외무성 등에 흩어져 있던 정보 기능을 한곳에서 조정하려는 구상이다.
한국경제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최근 미국, 호주, 독일 등 우방국 관계자들에게 새 정보기관 설립과 관련한 기술, 인력 구성, 업무 우선순위에 대한 조언을 요청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오는 12월 이른바 일본판 CIA로 불리는 기관을 출범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분산형 정보 체계의 한계
일본의 정보 수집과 분석 기능은 그동안 여러 부처에 나뉘어 있었다. 각 기관이 별도로 정보를 다루면서도 부처 간 공유와 공동 분석은 충분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일본 정부가 외국 간첩 활동, 사이버 공격, 온라인 영향력 공작에 취약하다는 평가가 나온 배경이다.
최근에는 러시아 정보요원들이 일본에서 무기 부품과 첨단기술을 확보하고 대러 제재를 우회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중국과 관련해서는 일본어 뉴스 매체처럼 보이는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친중 성향 허위 정보를 확산시키는 사례가 확인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카이치 정부는 국가기밀과 핵심기술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동시에 무기 수출 규제 완화와 방위력 증강을 추진해 온 흐름과 맞물려 일본 안보 정책의 무게중심이 더 적극적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우방국 자문과 정보동맹 구상
미국 정보당국은 일본 측에 사이버 방어와 산업 스파이 대응 방안을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인 투자와 일본 내 외국 대리인 심사를 강화하는 방안도 논의 대상에 올랐다. 독일의 해외정보기관인 연방정보국 수장도 도쿄를 찾아 정보 공유 확대 문제를 협의했다.
호주는 여러 부처가 정보를 함께 분석하고 공유하는 체계를 만드는 경험을 일본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이 장기적으로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가 참여하는 정보동맹체 ‘파이브 아이즈’와 더 긴밀한 관계를 모색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새 기관의 성패는 단순한 조직 신설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일본 관료조직의 부처 이기주의를 넘어서 실제 정보 공유 권한을 확보할 수 있는지, 인공지능과 첨단 분석 기술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지가 관건으로 꼽힌다.

감시사회 우려도 과제
일본 국내에서는 강력한 정보기관이 사생활 침해나 감시사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전쟁 전 정부 비판 세력을 탄압했던 특별고등경찰의 기억 때문에 정보기관 확대에 대한 거부감이 남아 있다는 점도 정치적 부담이다.
중국은 일본의 움직임을 군국주의 부활과 연결해 비판하고 있다. 반면 일본 정부는 주변국의 정보전과 기술 탈취에 대응하기 위한 최소한의 체계 정비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안보 환경 변화와 민주적 통제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향후 논쟁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새 정보기관이 예정대로 출범한다면 일본 안보 정책의 구조적 전환을 상징하는 사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실질적 정보 역량을 키우려면 우방국 협력, 법적 통제 장치, 부처 간 권한 조정이라는 세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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