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금강산’ 작곡가 최영섭 별세…한국적 정서 가곡 480여편 남겨

2026년 6월 29일 월요일, '방송·엔터' 카테고리에 게시된 뉴스입니다. 제목 : ‘그리운 금강산’ 작곡가 최영섭 별세…한국적 정서 가곡 480여편 남겨...

국민 가곡 ‘그리운 금강산’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최영섭이 29일 별세했다. 향년 97세. 유족에 따르면 최영섭은 노환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한 뒤 이날 오전 세상을 떠났으며, 아들인 록그룹 들국화의 베이시스트 겸 대중음악 작곡가 최성원은 연합뉴스에 “특별히 남긴 말은 없었다”고 전했다.

‘그리운 금강산’을 단숨에 완성한 밤

최영섭의 음악 경력은 해방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궤도를 탔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그는 인천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며 교회 주일학교 성가대 활동과 오르간 연주를 접하며 음악적 기반을 다졌다. 이후 밴드부에서 플루트와 트럼펫 등을 다루는 등 경험을 넓혀 갔고, 경복중학교 시절부터 본격적인 피아노 학습에 들어갔다.

그가 남긴 대표작 ‘그리운 금강산’은 특히 상징적이다. 최영섭은 시인 한상억의 시 ‘그리운 금강산’을 들은 뒤 “듣는 자리에서 멜로디가 거의 떠올랐다”고 회고했으며, 작곡을 결심한 다음 날 새벽에 완성했다고 전해졌다. 이 곡은 KBS 프로그램 ‘이 주일의 노래’에 채택되며 큰 사랑을 받았고, ‘누구의 주제련가 맑고 고운 산…’으로 시작하는 가사는 금강산의 아름다움과 분단의 아픔을 동시에 붙잡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았다.

[금강산 가곡] 기사 핵심 맥락을 보여주는 이미지 - 최영섭의 음악 경력은 해방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궤도를 탔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그는 인천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며 교회 주일학교 성가대 활동과...
기사의 핵심 내용을 시각화한 AI 이미지입니다. 최영섭의 음악 경력은 해방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궤도를 탔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그는 인천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며 교회 주일학교 성가대 활동과 오르간 연주를 접하며 음악적 기반을 다졌다. 이후 밴드부에서 플루트와 트럼펫…

조선사람의 마음으로…한국적 정서를 끝까지

최영섭은 작품에 한국적 정서를 담고자 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아르코예술기록원의 구술채록에서 그는 기악곡을 쓸 때의 마음가짐을 “나는 조선사람이다”로 표현했다. 또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묻히게 될 것을 영광으로 안다”며, 적지 않지만 향토적으로 작곡하려 애쓴 작품들이 이 땅에 오래 남을 것이라는 생각에 기쁘다고도 밝혔다.

그의 작품 세계는 가곡을 넘어 합창, 기악,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로 확장됐다. 보도에 따르면 최영섭이 평생 만든 가곡·기악곡·합창곡·오페라 등은 480여편에 이르며, 그가 편곡한 국내외 가곡은 1천500여곡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1957년에는 인천애협교향악단을 창설하는 등 지역 음악 생태계에도 꾸준히 손을 뻗었다.

국내를 넘어 세계 무대까지…‘가곡의 확장성’

‘그리운 금강산’은 국내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플라시도 도밍고, 조수미, 안젤라 게오르규, 볼쇼이 합창단 등 세계 정상급 성악가와 단체가 공연하거나 독집 앨범에서 부르며 국제적으로도 알려졌다. 특히 분단과 정서를 노래하는 내용이 언어를 넘어선 정서적 보편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음악이 세계 청중에게도 충분히 전달될 수 있었던 배경으로 해석된다.

최영섭은 광복 50주년을 맞아 일제시대의 고난과 분단,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은 칸타타 ‘오! 사랑하는 나의 조국’을 작곡하기도 했다. 이처럼 시대의 맥락을 음악 안에 담아내는 방식은 가곡이 ‘개인 감상’에 그치지 않고 시대의 감정과 기억을 축적하는 매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금강산 가곡] 기사 영향과 배경을 설명하는 이미지 - ‘그리운 금강산’은 국내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플라시도 도밍고, 조수미, 안젤라 게오르규, 볼쇼이 합창단 등 세계 정상급 성악...
기사의 배경과 파장을 설명하는 AI 이미지입니다. ‘그리운 금강산’은 국내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플라시도 도밍고, 조수미, 안젤라 게오르규, 볼쇼이 합창단 등 세계 정상급 성악가와 단체가 공연하거나 독집 앨범에서 부르며 국제적으로도 알려졌다. 특히 분…

빈소는 세브란스…7월 1일 발인

최영섭은 교육자로서의 이력도 뚜렷하다. 그는 한양대 음악학과 교수, 중앙대 음악교육학과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한국음악협회 부이사장 등으로 활동했다. 2009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지병은 없었고 노환으로 몸이 쇠하신 상태였다고 한다.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7월 1일이다.

남은 과제: 그의 가곡이 계속 연주될 방식

최영섭의 별세 이후에도 한국 대중과 예술계가 직면한 과제는 그의 작품을 ‘추모’에서 멈추지 않고 꾸준히 공연·교육·기록으로 이어가는 것이다. 특히 ‘그리운 금강산’처럼 세대 간에 반복해 불리는 레퍼토리는 공연 환경과 교육 커리큘럼에 따라 생명력이 크게 달라진다.

향후 어떤 방식으로 그의 방대한 작품(가곡 480여편, 편곡 1천500여곡 수준)을 분류·아카이빙하고 후대가 쉽게 접할 수 있게 할지에 관심이 모인다. 유족과 음악계가 남긴 기록이 본격적인 재발굴과 연주로 이어질 때, 최영섭이 평생 추구했던 “조선사람의 마음”과 한국적 정서는 새 세대에게 더 오래 전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알짜킹AI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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