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노동기구(ILO)가 차량 호출·음식 배달·전자상거래 등 ‘플랫폼 경제’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국제 기준을 처음으로 마련했다. ILO는 12일(현지시간) 제114차 총회에서 ‘플랫폼 경제에서 양질의 일자리 관련 협약’을 채택했으며, 디지털 플랫폼이 노동자를 독립 계약자로 분류해 최저임금·사회보장 등 보호 의무를 회피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번 협약은 정부, 사용자단체, 노동자단체가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는 ILO의 구성에 따라 채택됐다고 ILO는 밝혔다. 협약은 찬성 406명, 반대 8명, 기권 36명으로 통과했으며, 향후 최소 두 개 국가가 비준하면 비준 국가에서는 12개월 후 발효된다.
‘독립 계약자’ 분류로 생긴 사각지대 메우기
플랫폼 기반 업무는 계약 구조가 복잡한 경우가 많다. 많은 국가에서 배달원이나 운전기사 등 플랫폼 노동자를 법적으로 ‘직원’이 아닌 ‘독립 계약자’로 취급하는 관행이 이어져 왔고, 그 결과 최저임금 지급, 의료보험·병가, 사회보장 분담금 납부 같은 제도적 보호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해 왔다.
ILO는 협약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설명한다. 디지털 플랫폼 기업이 노동자를 독립 계약자로만 규정해 최저임금 및 복리후생 제공 의무를 회피하거나, 사회보장 관련 권리 보장을 약화시키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각국이 기준과 실행 장치를 갖추도록 요구한다는 것이다.
동일 고용 지위 노동자보다 불리하지 않게
협약은 각국 정부가 플랫폼 노동자에게 공정한 보수와 사회보장 보호가 제공되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특히 플랫폼 노동자가 ‘동일한 고용 지위를 가진 다른 노동자’와 비교했을 때 불리하지 않은 조건에서 사회보장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이는 플랫폼 노동자가 특정 노동형태라는 이유만으로 임금·보험·보호 수준에서 낮은 대우를 받는 구조를 제도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또한 협약은 플랫폼 기업이 고용·계약 조건에 관한 정보(보수 산정 방식, 이용자·플랫폼 규정, 서비스 수행에 따른 권리와 의무 등)를 노동자가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적시에 제공할 수 있도록 정보 검증 및 전달 체계도 마련하도록 요구한다.
인권·노동계 요구 반영…발효까지 ‘비준’이 관건
협약 논의 과정에서 휴먼라이츠워치(HRW) 등 인권단체와 노동조합들은 플랫폼 노동자를 독립 계약자로 분류해 기업이 최소한의 노동 보호를 회피해 왔다고 지적해 왔다. 이번 ILO 협약은 이런 문제 제기를 제도화 방향으로 끌어낸 것으로 평가된다. 협약이 발효되려면 최소 두 국가의 비준이 필요하며, 그 이후에는 비준국에서 12개월 뒤 효력이 생긴다.
따라서 관건은 각국 정부와 입법·행정 시스템이 협약 취지를 얼마나 빠르게 반영할 수 있는지다. 플랫폼 노동이 비정형·유연한 형태로 성장한 만큼, “누가 무엇을 어떻게 규정하고 보호할지”를 국가별로 구체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에는 ‘규정 준수’ 비용, 노동자에는 ‘권리의 예측가능성’
플랫폼 기업 입장에서는 노동자 분류(독립 계약자 vs 고용관계)와 보수·보험·정보 제공 방식 전반을 재설계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최저임금 보장이나 사회보장 체계 적용 범위를 넓히는 방향으로 제도가 바뀌면, 기존의 운영 모델에서 비용 구조와 리스크 관리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반대로 노동자 입장에서는 임금·보호 수준이 상황에 따라 임의로 흔들리는 것을 줄이고, 권리의 예측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협약이 노동자에게 제공돼야 할 사회보장 보호의 기준을 제시하는 만큼, 향후 각국에서 분쟁·감독이 늘어날지 여부도 주목된다.
무엇을 지켜봐야 하나
이번 협약 채택 이후 가장 먼저 봐야 할 것은 각국의 비준 일정이다. 협약 발효 전까지는 법적 구속력이 제한적일 수 있지만, 비준을 준비하는 국가에서 플랫폼 노동자 관련 고용·사회보장 제도 정비 논의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기업들이 노동자 분류와 계약 조건 공개 방식, 보수 산정의 투명성 등에서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도 중요하다. 플랫폼 경제의 확산 속도만큼, ‘양질의 일자리’ 기준이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는지 여부가 앞으로의 평가 기준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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