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기업이 국내 기업에 기술·노하우를 이전하고 받은 대가에 대해 법인세를 매길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한미조세협약에 근거해 ‘노하우 대가는 과세 대상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18일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미국 제약사 제노스코가 동작세무서장을 상대로 제기한 법인세 환급 거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환송했다. 핵심 쟁점은 한미조세협약이 정한 ‘자본적 자산’ 및 과세 처리 방식이 기술·노하우 이전 대가에도 그대로 적용되는지 여부다.
기술·노하우 이전 대가, ‘과세 대상 아님’ 주장과 반전
대법원 사건은 제노스코와 유한양행 사이의 기술이전 계약에서 출발했다. 제노스코는 2016년 유한양행에 간암 표적 치료용 화합물에 대한 기술 및 노하우를 이전하고, 그 대가로 기술료 등을 받는 계약을 맺었다.
유한양행은 기술료 중 일부로 제노스코에 5억 원을 지급하면서 원천징수 방식으로 7500만 원의 법인세를 납부했다. 이후 제노스코는 한미조세협약에 따라 노하우 대가가 법인세 과세 대상이 아니라며 환급을 요구했지만, 과세당국이 이를 거부하자 소송으로 이어졌다.
2심은 유한양행이 제노스코로부터 받은 기술·노하우가 한미조세협약상 ‘자본적 자산’에 해당한다고 보고 제노스코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대법원 판단은 2심과 달랐다.
대법 “협약의 문맥에 비춰 노하우는 자본적 자산에 해당하지 않을 여지”
대법원은 먼저 국내법에 ‘자본적 자산’이라는 개념이 명확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짚었다. 이어 1976년 체결된 한미조세협약 당시 미국 세법의 문맥을 참고해 해석해야 한다고 봤다.
대법원에 따르면, 당시 미국 세법에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가치가 깎이는 ‘감가상각 대상 재산’은 자본적 자산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이해됐다. 이를 근거로 대법원은 “당시 문맥에 따르면 노하우는 협약이 뜻하는 자본적 자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 대법원은 “노하우 등은 한미조세협약상 무형의 개인재산에 포함될 여지가 있고, 해당 소득은 노하우가 매각되는 장소에서 발생한 것으로 취급돼야 한다”면서 “노하우 등이 무형의 개인재산인지, 매각된 장소를 우리나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무형 개인재산’과 ‘거래 장소’가 관건…환송심서 따져볼 것
이번 판결의 의미는 기술·노하우 이전 대가가 무조건 비과세라는 결론으로 단정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대법원은 한미조세협약 해석에서 출발점은 ‘자본적 자산’ 여부가 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해당 대가를 협약이 정한 다른 범주(무형의 개인재산)로 분류할지, 그리고 과세가 허용되는 ‘발생 장소’로 우리나라를 볼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고 본 것이다.
환송된 서울고법에서는 제노스코가 주장한 계약의 법적 성격과 대가의 실질, 해당 노하우의 이전 구조가 협약상 어떤 소득 범주에 해당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심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매각(이전)된 장소”를 어디로 볼지에 관한 사실관계 판단도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기업의 기술이전 계약·세무 설계에 영향
법원 판단이 바뀌면서 기술이전(라이선스·마일스톤·기술료) 구조를 갖춘 기업들의 세무 리스크 관리에도 관심이 쏠린다. 통상 기술료에는 원천징수 관행이 붙는 경우가 많지만, 조세협약상 분류가 달라지면 환급 또는 추가 납부가 문제될 수 있다.
이번 판결은 특히 대가의 성격(무형 자산의 이전인지, 단순 서비스인지), 그리고 이를 조세협약의 어떤 범주로 볼지에 따라 과세 여부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기업이 해외 이전 대가를 지급받는 구조를 가진 국내 기업과 글로벌 파트너들은 향후 계약서 문구와 지급 조건, 발생 장소 관련 쟁점까지 더 정교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무엇이 더 중요해질까: 유사 사건의 확산 여부
대법원이 사건을 환송한 만큼 이번 결론이 곧바로 ‘기술·노하우 대가 과세’로 완전히 굳어졌다고 단정하긴 이르다. 다만 한미조세협약 해석에서 ‘자본적 자산’ 적용을 좁히고, 무형 개인재산 및 발생 장소 판단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향후 하급심과 유사 분쟁에 일정한 기준을 제공할 수 있다.
앞으로 환송심에서 어떤 사실관계가 인정되고, 그에 따라 협약상 소득 범주와 과세 장소가 어떻게 결론 날지 주목된다. 기술·노하우를 둘러싼 국제거래가 늘어나는 가운데, 세무당국과 기업 간 협약 해석 다툼이 더 빈번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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