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 기술이 빠르게 확산되는 가운데, 비영어권 언어와 지역 공동체를 위한 공공 AI 인프라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비영리단체 Current AI는 대형 기술기업 중심의 AI 개발 구조와 다른 대안을 제시하며,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개형 AI 생태계를 목표로 내세웠다.
TechCrunch 보도에 따르면 Current AI는 인도 정부의 AI 언어 부문인 바시니와 협력해 ‘Suno Sutra’라는 소형 오프라인 기기를 선보였다. 이 기기는 인터넷 연결 없이도 22개 인도 언어로 AI 기능을 실행하도록 설계됐다. 농촌 지역 이용자가 영어를 쓰지 않아도 작물 상태를 기록하고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사례가 주목받는 이유는 AI 접근성 문제가 단순히 최신 모델의 성능 문제가 아니라 언어, 문화, 데이터 통제권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Current AI의 아야 브데이르 최고경영자는 인도에는 수많은 언어와 방언이 있지만 현재 AI가 이를 충분히 대표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민간 플랫폼 중심 AI에 대한 공공 대안
Current AI는 2025년 2월 설립된 비영리 조직으로, 정부와 기업, 재단 자금을 결합한 공공·민간 협력 모델을 표방한다. 프랑스 정부가 초기 자금 1억 달러를 제공했고, 포드재단과 맥아더재단, 딥마인드, 세일즈포스 등이 참여하면서 약정된 총 자금은 4억 달러 규모로 알려졌다.

조직의 핵심 문제의식은 현재 주요 AI 시스템 대부분이 민간 대기업의 소유라는 데 있다. Current AI는 AI가 사회 전반을 바꿀 기반 기술이라면, 초기 월드와이드웹처럼 누구나 무료로 접근하고 개선할 수 있는 공공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언어 다양성은 Current AI가 강조하는 핵심 의제다. 세계 구어의 상당수가 소멸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영어 중심 데이터와 모델이 AI 생태계를 지배하면 언어뿐 아니라 그 언어가 담고 있는 지식, 기억, 문화도 기술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 공동체가 데이터 규칙을 정하는 방식
Current AI가 최근 발표한 첫 지원 라운드는 케냐, 레바논, 브라질 아마존 등 여러 지역의 네 개 조직에 320만 달러를 배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케냐의 마사카네 프로젝트는 보건, 농업, 교육 분야에서 50개가 넘는 아프리카 언어 데이터셋을 구축하고, 레바논의 Institute for Worldmaking은 아랍 문화 자료를 공동체가 통제할 수 있는 기계 판독 데이터베이스로 전환하는 작업을 추진한다.
브라질 아마존의 Portal sem Porteiras는 원주민 공동체와 함께 오프라인 AI 도구를 만들면서 데이터를 해당 지역 안에 보관하는 방식을 실험한다. 케냐의 African Internet Rights Alliance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AI 시스템을 점검하고 책임성을 따질 수 있는 감사 도구를 개발하고 있다.
이 접근법의 초점은 ‘누가 데이터를 소유하고 규칙을 정하는가’에 있다. Current AI는 개발 초기부터 공동체 전문가를 참여시키고, 동의 절차를 기술 파이프라인에 반영해 언제든 중단할 수 있는 구조를 모색한다. 아직 완성된 해법은 아니지만, 복잡하다는 이유로 정부나 기업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관행을 피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오픈소스 AI 스택 경쟁도 본격화
Current AI는 최근 제네바에서 열린 AI for Good Summit에서 오픈소스 챗봇 ‘Alpha Chat’도 공개했다. 허깅페이스, 모질라, MIT 미디어랩 등 10개 조직이 모델, 안전성 도구, 컴퓨팅 자원 등 AI 스택의 각 요소를 나눠 맡아 7주 만에 구성한 프로젝트다.
또 일본의 Sakana AI와도 협력해 일본어와 일본 문화, 나아가 글로벌 사우스 지역 공동체를 지원하는 오픈소스 AI 스택을 만들 계획이다. 이는 AI 주권과 문화적 대표성을 둘러싼 논의가 단순한 원칙 선언을 넘어 실제 인프라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공공 AI 모델이 대형 기술기업의 자본력과 속도에 맞설 수 있을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Current AI가 내세운 장점은 대규모 시장 확장보다 지역 공동체의 통제권과 맥락을 우선한다는 점이다. 앞으로 이 실험이 실제 서비스 품질과 지속 가능한 운영 구조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공공 AI 논의의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