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네시아가 인공지능(AI) 시대의 저작권 질서를 새로 정비하는 법 개정에 나서면서 동남아 디지털 규제의 중요한 시험대가 마련되고 있다. 개정안은 AI가 만든 콘텐츠에 표시 의무를 부과하고, 창작자의 고유한 표현 방식을 무단으로 모방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전해졌다. 생성형 AI가 글, 이미지, 음악, 영상 등 여러 창작 영역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가운데, 인간 창작자의 권리와 플랫폼 기업의 기술 개발 자유가 정면으로 맞부딪히는 구도다.
이번 논의의 핵심은 AI 결과물이 어디까지 사람의 창작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 또 AI 모델을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기존 저작물이 어떤 방식으로 보호받아야 하는지다. 인도네시아 국회가 준비 중인 저작권법 개정안은 AI를 활용한 콘텐츠 제작 사실을 이용자에게 알리도록 하고, 창작자의 개성 있는 표현 양식을 AI가 그대로 따라 하는 행위를 제한하는 방향을 포함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 규제가 아니라 창작 시장의 신뢰와 보상 체계를 다시 설계하는 문제로 번지고 있다.
AI 콘텐츠 표시와 창작자 보호가 쟁점
AI 콘텐츠 표시 의무는 독자가 콘텐츠의 제작 과정을 판단할 수 있게 하는 장치다. 기사, 광고, 영상, 이미지가 사람의 직접 창작인지, AI 보조를 받은 결과인지, 또는 AI가 거의 전적으로 만든 결과인지에 따라 수용자의 평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적 메시지나 상업 광고, 교육 자료처럼 사실성과 출처가 중요한 분야에서는 표시 의무가 허위 정보와 오인 가능성을 줄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창작자 보호 조항도 민감하다. 특정 작가, 화가, 음악가의 스타일을 AI가 손쉽게 모방할 수 있게 되면서 창작자들은 자신의 작업물이 학습 데이터로 쓰였는지 알기 어렵고, 비슷한 결과물이 시장에 대량 공급될 경우 수익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인도네시아 법안이 창작자의 독특한 표현 방식 모방을 금지하려는 것은 이런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다만 표현 방식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일반적 장르 관습과 개인의 고유한 스타일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는 향후 해석 논란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개정안은 AI를 활용해 만든 콘텐츠의 저작권 인정 기준도 다룬다. 사람이 일정 수준 이상 창작에 참여한 경우에는 보호 가능성을 열어두지만, AI가 전적으로 생성한 결과물은 보호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향이다. 이는 여러 국가에서 논의되는 기준과도 유사하다. 그러나 사람의 참여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명확한 기준이 없으면, 실제 분쟁에서는 프롬프트 작성, 편집, 배열, 후반 작업 중 어떤 행위가 창작적 기여로 인정되는지를 두고 다툼이 이어질 수 있다.
뉴스 보상 규정에 플랫폼 반발
또 다른 쟁점은 뉴스 콘텐츠 보상이다. 개정안에는 AI 플랫폼 사업자가 뉴스 콘텐츠를 수집해 다시 게시하거나 AI 학습에 사용할 경우 보상금을 내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보상금은 국가 감독을 받는 저작권 관리 단체를 통해 언론사에 분배되는 구조가 검토되고 있다. 이는 생성형 AI 서비스가 뉴스 생태계의 콘텐츠를 활용해 가치를 만들면서도 원 생산자에게 충분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언론계의 문제 제기를 반영한다.
구글은 이런 접근이 지나치게 경직되거나 넓게 설계될 경우 창작자와 혁신 모두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반발했다. 플랫폼 기업 입장에서는 불명확한 보상 의무와 포괄적 규제가 투자와 서비스 개발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논리다. 반면 정부와 창작자 측은 규칙 없이 시장에 맡겨둘 경우 인간 창작 활동이 위축되고, 언론사와 문화 생산자가 데이터 공급자로만 남을 수 있다고 본다.
인도네시아의 선택은 동남아 지역 전체에도 파급될 수 있다. 로이터는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인도네시아가 동남아에서 처음으로 저작권법에 AI 관련 규정을 포함하는 국가가 된다고 짚었다. 인구 규모가 크고 디지털 소비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인도네시아가 선례를 만들면, 주변 국가들도 AI 학습 데이터, 콘텐츠 표시, 창작자 보상 문제를 법제화하는 논의를 서두를 가능성이 있다.

다만 법안이 실효성을 갖추려면 세부 기준이 중요하다. AI 사용 표시의 범위, 학습 데이터 이용의 예외, 공정 이용과 라이선스 계약의 관계, 보상금 산정 방식, 국경을 넘나드는 플랫폼에 대한 집행 수단이 모두 쟁점이다. 규제가 지나치게 모호하면 기업은 위험을 피하기 위해 서비스를 축소할 수 있고, 반대로 느슨하면 창작자 보호라는 법 개정의 목적이 약해질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AI 저작권법 논의는 결국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잡는 법 제도가 어디까지 구체적이고 균형 있게 설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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