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가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순항미사일의 현지 생산을 허용하는 협정을 맺으면서 서방의 군사지원 방식이 한 단계 더 깊어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완성된 무기와 탄약을 보내는 방식이 중심이었다면, 이번 합의는 우크라이나가 자국 공장에서 핵심 무기를 직접 만들 수 있는 권리를 받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연합뉴스가 영국 텔레그래프 보도를 인용해 전한 내용에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파리에서 새 국방 협정에 서명했다. 협정에는 프랑스가 스칼프-EG 장거리 순항미사일 설계와 생산 권리를 우크라이나 측에 제공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스칼프는 영국의 스톰섀도와 같은 계열의 장거리 공대지 순항미사일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후방 군사시설을 압박하는 데 활용해 온 무기다.
완제품 지원에서 생산 면허로
이번 협정이 주목되는 이유는 지원의 형태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우크라이나는 서방이 제공하는 물량과 생산 속도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미사일과 방공 요격탄은 수요가 빠르게 늘고, 생산에는 시간이 걸린다. 현지 생산이 가능해지면 보급 시간을 줄이고, 우크라이나의 전장 상황에 맞춰 생산과 정비 체계를 조정할 여지가 생긴다.
우크라이나는 스칼프뿐 아니라 아스테르 30 요격미사일과 AASM 정밀 유도 공대지 폭탄의 생산 면허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프랑스산 라팔 전투기 16대 신규 주문과 샘프티 지대공 방공 시스템 4개 포대 도입도 협정에 포함됐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공격과 방어 양쪽 전력을 동시에 보강하려는 흐름과 맞물린다.

장거리 타격 능력은 러시아의 군수공장, 지휘시설, 보급망을 압박하는 데 쓰인다. 반면 방공망은 러시아의 미사일과 드론 공습으로부터 도시와 에너지 기반 시설을 지키는 데 필수적이다. 어느 한쪽만으로는 전쟁의 부담을 줄이기 어렵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두 축을 함께 키우는 전략이 필요하다.
유럽 방산의 역할 확대
프랑스의 결정은 미국이 패트리엇 방공 시스템용 PAC-3 요격미사일의 우크라이나 현지 생산을 허용하겠다고 밝힌 직후 나왔다. 미국과 유럽 주요국이 완제품 제공을 넘어 생산 면허와 기술 협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서방 방산 공급망 전체의 재편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방식은 우크라이나의 자립도를 높일 수 있지만, 동시에 러시아의 반발과 확전 우려를 키울 수 있다. 특히 장거리 순항미사일은 러시아 본토의 군사 목표를 타격할 수 있는 무기라는 점에서 정치적 민감도가 높다. 서방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의 방어권을 강조하면서도 무기 사용 범위와 책임 문제를 계속 조율해야 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번 협정을 두고 프랑스가 유럽 전체의 이익을 위해 리더십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그 발언에는 우크라이나 방어가 단지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유럽 안보 질서와 직결돼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프랑스 역시 유럽 방위산업의 존재감을 키우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전쟁 장기화가 만든 새 공식
이번 합의는 단기간에 전장을 바꾸는 만능 해법은 아니다. 실제 생산 설비 구축, 기술 이전, 부품 조달, 인력 훈련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러시아의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 생산시설을 어디에 두고 어떻게 보호할지도 과제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가 핵심 무기의 공급망 일부를 자국 안으로 끌어온다는 점은 전략적으로 작지 않은 변화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무기 지원은 정치적 선언만으로 유지되기 어렵다. 지속 가능한 생산 능력과 방공, 장거리 타격, 정비 체계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프랑스와 우크라이나의 이번 협정은 서방 지원이 일회성 물량 제공에서 장기 산업 협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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