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가 알프레드 드레퓌스의 무죄 판결 120주년을 맞아 대법원 앞에 그의 동상을 설치했다. 19세기 말 유대계 장교였던 드레퓌스가 독일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은 뒤, 1906년 재심 끝에 무죄와 복권을 인정받은 사건을 국가적 기억으로 다시 세우는 조치다.
이번 기념은 단순한 역사 회고가 아니다. 프랑스 정부는 대법원이 드레퓌스에게 무죄를 선고한 7월 12일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했고, 올해 첫 공식 기념식을 열었다. 동상이 들어선 장소가 대법원 앞이라는 점도 상징적이다. 사법의 실패와 회복을 같은 공간에서 되새기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40년 떠돈 동상이 찾은 자리
높이 3.5m의 드레퓌스 동상은 1985년 제작됐지만 원래 예정됐던 군사 교육기관 안뜰에는 설치되지 못했다. 군 수뇌부의 반대로 제자리를 얻지 못한 채 파리 여러 곳을 옮겨 다녔고, 무죄 판결 120주년을 맞아 뒤늦게 프랑스 대법원 앞에 놓이게 됐다.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 제3공화국을 뒤흔든 대표적 사법 오판이자 정치·사회 갈등의 상징이다. 1894년 육군 포병대위였던 드레퓌스는 반유대주의 분위기 속에서 간첩 혐의를 뒤집어썼다. 이후 진상을 밝히려는 군 내부 인사와 지식인들의 문제 제기로 재심이 이어졌고, 결국 무죄 판결이 나왔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 사회는 드레퓌스파와 반드레퓌스파로 갈라졌다. 문제는 한 개인의 억울한 처벌에 그치지 않았다. 유대인에 대한 편견, 군과 사법기관의 폐쇄성, 여론과 정치가 재판에 미치는 영향이 한꺼번에 드러났다. 그래서 드레퓌스 사건은 오늘날에도 법치주의와 시민권 논의에서 자주 소환된다.
마크롱의 메시지와 현재적 경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기념식에서 드레퓌스 사건이 1906년 판결로 끝난 과거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반유대주의가 완전히 사라진 적이 없다는 경고와 함께, 한 개인의 종교나 출신 공동체가 사법과 여론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정신을 언급했다.
프랑스에서 드레퓌스 사건은 국가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는 방식과도 관련돼 있다. 무고한 장교를 처벌한 사법 시스템은 뒤늦게 이를 바로잡았지만, 그 회복에는 긴 시간과 사회적 충돌이 필요했다. 동상 설치는 그 지연된 인정의 과정을 공적 공간에 남기는 일이다.
이번 기념식은 유럽에서 반유대주의와 혐오 범죄에 대한 우려가 다시 커지는 시점과도 맞물린다. 중동 정세와 이민, 극우 정치의 부상은 유럽 사회 내부의 오래된 갈등을 다시 자극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가 드레퓌스의 이름을 앞세운 것도 이런 현재적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역사를 기념하는 방식의 의미
동상 하나가 과거의 부당함을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공적 장소에 무엇을 세우고 누구를 기억할지 정하는 일은 사회가 어떤 가치에 무게를 두는지를 보여준다. 프랑스가 대법원 앞에 드레퓌스를 세운 것은 국가 권력이 저지른 오류를 숨기지 않고 교육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드레퓌스 사건은 현대 사회에도 익숙한 질문을 던진다. 여론이 특정 집단을 손쉽게 희생양으로 만들 때 법은 얼마나 독립적일 수 있는가. 국가기관이 잘못을 인정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민적 압박이 필요한가. 그리고 차별의 언어가 제도 안으로 들어왔을 때 어떤 피해가 발생하는가.
무죄 판결 120주년의 동상 설치는 그래서 과거의 장면을 복원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프랑스는 드레퓌스의 이름을 통해 사법 정의와 차별 반대의 원칙을 다시 확인했다. 그 기억이 현재의 정치와 사회 안에서 얼마나 실질적으로 작동할지는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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