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요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증가 속도가 다시 빨라지면서 하반기 대출 시장의 문턱이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5대 은행이 올해 허용받은 가계대출 증가 목표의 약 80%를 이미 사용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은행권은 주택담보대출과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줄이는 방식으로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정책성 대출을 제외한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9일 기준 648조3607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보다 3조3846억 원 늘어난 규모다. 이들 은행의 올해 가계대출 증가 목표는 합산 4조3300억 원 수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목표치의 78% 이상이 이미 소진됐다.
1분기 감소 뒤 2분기 급증
올해 초만 해도 은행권 가계대출은 줄어드는 흐름이었다.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방안 이후 은행들이 보수적으로 영업하면서 1분기에는 지난해 말보다 잔액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2분기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주택 거래가 살아나고 증시가 강세를 보이면서 대출 수요가 빠르게 되살아났다.
특히 5월 이후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주택 매매가 늘면 계약 직후가 아니라 잔금 시점에 주담대가 실행되는 경우가 많다. 4~6월에 늘어난 거래가 7~9월 대출 잔액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서울과 경기권 아파트 거래량이 늘어난 점도 은행권이 하반기 대출 증가를 경계하는 이유다.

신용대출 쪽에서는 마이너스통장 증가가 눈에 띈다. 5대 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이달 들어서만 수천억 원 늘었고, 마이너스통장 잔액은 44조 원을 넘어섰다. 4월 말과 비교하면 4조 원 이상 증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증시 활황 속에서 빚을 내 투자하려는 수요가 대출 총량을 빠르게 소진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 셈이다.
은행권 자율 규제 확산
은행들은 이미 여러 방식으로 대출을 조이고 있다. 국민은행은 주담대 최대 한도를 기존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는 강한 조치를 내놨다. 마이너스통장 한도 역시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최대 5000만 원으로 제한했고, 농협은행은 연 소득의 50% 이내로 묶었다. 인터넷전문은행도 마이너스통장 한도 축소에 동참하고 있다.
주담대 한도를 사실상 줄이는 효과가 있는 모기지보험 가입 중단도 확산했다. 일부 은행은 대출모집법인을 통한 신규 접수를 멈췄고, 우대금리 축소로 대출 금리 혜택을 줄이는 사례도 나왔다. 은행별 조치가 다르지만 공통된 방향은 대출 증가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문제는 한 은행이 대출을 줄이면 수요가 다른 은행으로 이동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은행도 월별·분기별 총량 목표를 관리해야 해 이탈 수요를 모두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국민은행의 조치가 다른 은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거론되는 이유다. 금융당국이 지방은행의 가계부채 관리 방안도 점검한 만큼 규제 흐름이 지방은행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자금 계획을 더 보수적으로 세울 필요가 커졌다. 주택 매매 계약을 앞두고 있다면 대출 가능 한도와 실행 시점을 은행별로 다시 확인해야 한다. 주담대와 신용대출을 함께 활용하려는 경우에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뿐 아니라 은행 내부 한도 축소까지 변수로 고려해야 한다.
가계부채 관리는 금융 안정 차원에서 불가피하지만, 규제가 갑작스럽게 강화될 경우 이미 거래를 진행한 실수요자에게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 하반기 대출 시장은 금리 수준보다 총량 관리가 더 큰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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