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이 금융권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인공지능(AI) 에이전트에 대응해 맞춤형 규제 필요성을 시사했다. 결제와 금융거래를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하는 기술이 기존 금융 안정 규제의 전제를 흔들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로이터 통신 보도를 인용한 연합뉴스에 따르면 세라 브리든 영란은행 금융안정 담당 부총재는 지난달 30일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유럽중앙은행 콘퍼런스에서 AI 에이전트의 발전 속도와 금융시장 위험을 언급했다.
기존 규제는 AI 에이전트를 전제로 하지 않았다
브리든 부총재는 기존 규제 체계가 AI 에이전트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AI 에이전트의 행동에 적절한 개입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기존 규제만으로도 AI 위협을 완화할 수 있다는 입장에 가까웠던 영란은행이 보다 정교한 접근을 검토하는 흐름으로 읽힌다.
AI 에이전트는 사전에 정해진 명령을 단순 수행하는 수준을 넘어, 목표와 조건에 따라 판단하고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을 뜻한다. 금융권에서는 고객 응대, 위험 관리, 운영 자동화, 거래 보조 등에서 활용 가능성이 크지만, 작동 방식이 복잡해질수록 책임 소재와 통제 기준도 어려워진다.

케임브리지 대안금융센터 조사에 따르면 금융회사 52%가 이미 AI 에이전트를 사용하고 있다. 현재는 위험도가 낮은 운영 업무나 추천 기능 등에 주로 활용되지만, 기술이 결제와 거래 의사결정 영역으로 넓어질 경우 금융 안정 논의의 중심 쟁점이 될 수 있다.
시장 급변 때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위험
브리든 부총재가 강조한 위험은 여러 AI 에이전트가 같은 프롬프트나 트리거에 비슷하게 반응하는 상황이다. 스트레스 국면에서 다수 시스템이 동시에 매도나 거래 중단 같은 행동을 택하면 시장 변동성이 증폭될 수 있다. 특히 모델의 목표가 원래 설정이나 공공 정책 목표에서 벗어날 경우 위험은 더 커진다.
영란은행은 은행 핵심 시스템에 대해 강화된 복구 조치가 필요한지도 검토하고 있다. 한 은행의 시스템 장애가 발생했을 때 다른 은행이 일부 기본 기능을 일시적으로 인수해 운영하는 방식까지 논의 대상에 올랐다.
또 결함 있는 AI 모델이 시장 붕괴를 초래할 가능성에 대비해 시장 전반의 거래를 제한하거나 중단할 수 있는 안전장치도 거론됐다. 서킷 브레이커와 킬 스위치 같은 장치는 전통 금융시장에도 존재하지만, AI 에이전트 시대에는 작동 기준과 책임 주체를 더 세밀하게 정해야 한다.

글로벌 규제 논의도 빨라질 전망
금융안정위원회도 최근 AI 에이전트가 인간 감독에 새로운 난제를 던진다며 더 강력한 안전장치를 촉구한 바 있다. 금융회사가 AI를 도입하는 속도와 규제 기관이 위험을 이해하는 속도 사이에 간극이 생기면, 예기치 못한 시스템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영란은행의 이번 발언은 특정 기술을 막겠다는 선언이라기보다 금융 안정 규칙을 AI 시대에 맞춰 다시 점검하겠다는 신호에 가깝다. 앞으로 각국 중앙은행과 감독기구가 AI 에이전트의 자율성, 설명 가능성, 비상 중단 권한, 사이버 보안 기준을 어떻게 제도화할지가 금융권의 핵심 과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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