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이 일자리를 대규모로 없앨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 가운데, 오픈AI 내부 경제학자가 다른 해석을 내놨다. 로니 차터지 오픈AI 수석경제학자는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유럽중앙은행(ECB) 연례 워크숍에서 AI에 노출된 업무가 곧바로 AI에 의해 대체된다는 뜻은 아니라고 밝혔다. 발언의 핵심은 AI의 충격을 단순한 고용 감소로만 볼 것이 아니라, 직무가 어떻게 재편되고 생산성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로 분석해야 한다는 데 있다.
이 발언은 AI 기술이 기업 현장에 빠르게 들어오는 시점에 나왔다. 생성형 AI는 문서 작성, 자료 요약, 코드 보조, 고객 응대, 데이터 분석 등 지식노동의 여러 영역에 이미 영향을 주고 있다. 일부 직무는 자동화 압력을 받고 있지만, 동시에 기존 업무를 더 빠르게 처리하거나 새 서비스를 만들 수 있게 하는 도구로 쓰이는 사례도 늘고 있다. 차터지의 주장은 바로 이 양면성에 초점을 맞춘다.
PC 보급 사례로 본 기술 충격
차터지는 경제학자였던 자신의 아버지가 1985년 개인용 컴퓨터를 도입했던 경험을 예로 들었다. 과거에는 통계 분석을 위해 메인 컴퓨터가 있는 별도 공간에서 펀치 카드를 사용해야 했지만, PC가 들어온 뒤에는 개인 책상에서 분석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이 변화가 아버지의 일을 없앤 것이 아니라 업무 효율을 높이고 생산성을 끌어올렸다고 설명했다.
이 사례는 AI 논쟁에서도 자주 거론되는 기술 확산의 전형적인 경로와 맞닿아 있다. 새로운 범용 기술은 초기에는 기존 업무 방식을 흔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업무 절차와 조직 구조, 필요한 역량을 함께 바꾼다. PC가 회계, 연구, 편집, 금융 업무의 방식을 바꿨듯 AI 역시 특정 업무 단위를 자동화하면서도 사람의 판단, 기획, 검증, 책임이 필요한 영역을 남길 수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의 엇갈린 신호
차터지는 최근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에서도 AI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사람들이 예상한 만큼 현실화하지 않았다고 봤다. 코드 생성 도구가 개발자의 반복 작업을 줄인 것은 분명하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제품 설계, 보안 검토, 시스템 통합, 품질 관리 등 더 넓은 문제를 해결할 인력을 필요로 한다. AI가 코드를 제안하더라도 그 코드가 실제 서비스 환경에서 안전하게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책임은 사람에게 남아 있다.
다만 낙관론만으로 노동시장 변화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기업이 비용 절감 압박을 받을 때 AI는 일부 직무의 채용 속도를 늦추거나 초급 업무를 줄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특히 반복성이 높고 산출물이 명확한 업무는 자동화 압력에 더 많이 노출된다. 따라서 AI가 일자리를 없애지 않는다는 주장도 직무별, 산업별, 숙련도별 차이를 함께 따져야 설득력을 얻는다.
정책 당국의 관심은 고용 지표 너머로
AI의 경제적 영향은 중앙은행과 정부의 핵심 의제가 됐다. ECB 연구진은 아직 실제 일자리 감축의 뚜렷한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지만, 정책 당국은 생산성 향상과 임금 격차, 직업 전환 비용을 동시에 주시하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도 유럽이 AI를 신속히 수용하는 편이 유리하다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일자리 대체 가능성에는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 논쟁의 실질적인 초점은 ‘AI가 사람을 대신할 것인가’라는 단일 질문에서 ‘어떤 업무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로 이동하고 있다. 같은 직업 안에서도 일부 업무는 자동화되고, 다른 업무는 더 중요해질 수 있다. 예컨대 보고서 초안 작성은 빨라질 수 있지만, 사실 검증과 의사결정, 이해관계 조율의 중요성은 더 커질 수 있다.

기업과 노동자는 이런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 기업은 AI 도입을 인력 감축 수단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업무 설계와 교육, 책임 체계 정비와 함께 추진해야 한다. 노동자에게는 AI 도구를 활용하는 능력뿐 아니라 결과물을 판단하고 오류를 바로잡는 역량이 중요해진다. 정책 당국은 재교육, 전직 지원, 데이터 접근성, 경쟁 질서 같은 제도적 기반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차터지의 발언은 AI 낙관론으로만 읽기보다, 기술 변화의 속도에 비해 노동시장 분석이 더 정교해져야 한다는 요구로 볼 수 있다. AI가 일자리를 모두 대체할 것이라는 비관론도, 아무 충격이 없을 것이라는 낙관론도 충분하지 않다. 앞으로의 쟁점은 AI가 만들어내는 생산성 이익을 누가 가져가고, 전환 과정의 비용을 어떻게 줄일지에 맞춰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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