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일 국내 금융시장은 서로 다른 방향의 신호를 동시에 보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549.4원으로 주간 거래를 마치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에 근접했다. 반면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장중 큰 변동성을 보인 끝에 상승 마감했다. 환율 불안이 이어지는 가운데 인공지능(AI) 반도체 기대가 대형 기술주를 떠받친 하루였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2.1원 낮은 1543.1원에 출발했다. 중동 긴장이 일부 완화되고 뉴욕 증시가 회복한 영향으로 장 초반에는 부담이 줄어드는 듯했다. 그러나 이후 달러 매수세가 다시 강해지면서 장중 1550원선을 넘어섰다. 지난 8일 장중 1555.2원을 기록한 뒤 16거래일 만에 다시 1550원대를 위협한 것이다.
종가는 전 거래일보다 4.2원 오른 1549.4원이었다. 종가 기준으로는 2009년 3월 6일 1550.0원 이후 약 17년 3개월 만의 최고 수준이다. 시장에서는 1550원 부근에서 외환당국의 개입으로 추정되는 물량이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환율이 심리적 저항선을 넘어설 경우 수입 물가와 외국인 자금 흐름에 대한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달러 강세와 지정학 변수, 환율 하락 제한
환율 불안의 배경에는 달러 강세와 대외 불확실성이 함께 놓여 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이날 오후 3시 27분 기준 101.33으로 전날보다 올랐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 중단 논의가 전해졌지만, 실제 긴장 완화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아직 확인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많다. 위험 회피 심리가 완전히 풀리지 않으면서 원화 약세 압력도 남았다.

전문가들은 달러 약세 폭이 크지 않고 중동 관련 합의도 불완전한 만큼 환율 하락이 제한될 수 있다고 본다. 외환시장에서 1550원선은 단순한 가격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기업의 결제 수요, 수입 원가, 해외 투자 심리, 외국인 주식 매매까지 연결되는 기준점이기 때문이다. 환율이 높은 수준에서 고착되면 물가와 기업 비용에 대한 우려도 다시 커질 수 있다.
증시는 다른 표정을 보였다. 삼성전자는 전장보다 3.41% 오른 33만4000원에 마감했다. 장 초반에는 하락 전환해 32만1000원까지 밀렸지만 이후 매수세가 유입되며 오후 한때 34만3000원까지 뛰었다. SK하이닉스도 장중 254만1000원까지 내려갔다가 반등해 265만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하루 안에서도 반도체 대형주의 기대와 경계가 빠르게 교차한 셈이다.
AI 반도체 기대가 대형주 반등 견인
국내 반도체주 반등에는 미국 기술주 회복이 영향을 줬다. 간밤 뉴욕 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 S&P500지수, 나스닥지수가 모두 상승했다. 엔비디아,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브로드컴 등 주요 반도체 관련 종목이 오르며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도 크게 뛰었다. 국내 시장에서는 AI 반도체 투자 계획이 포함된 정책 발표도 투자심리를 보탠 요인으로 거론됐다.
다만 수급을 보면 낙관만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3조8197억원을 순매도했다. 전기·전자 업종에서도 외국인은 2조4798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특히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외국인 순매도 금액 상위에 올랐다. 주가는 상승했지만 외국인 자금이 적극적으로 돌아왔다고 보기 어려운 장세였다는 뜻이다.

개인과 기관의 매수세는 반도체주의 하단을 지지했다. 반도체 업황 개선 기대, AI 서버와 고대역폭메모리 수요 전망, 글로벌 기술주 반등이 맞물리며 저가 매수 논리가 강화됐다. 그러나 환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외국인 투자자의 원화 자산 선호도에는 부담이 생길 수 있다. 주가 반등과 환율 급등이 동시에 나타난 이날 흐름은 국내 금융시장이 아직 안정 국면에 들어섰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앞으로 시장의 초점은 1550원선을 둘러싼 외환시장 방어력과 반도체 실적 기대의 지속성에 맞춰질 전망이다. 달러 강세가 누그러지고 외국인 매도세가 완화된다면 반도체 대형주의 반등은 더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환율이 추가로 치솟거나 대외 불확실성이 재부각될 경우 증시의 기술주 회복도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 국내 시장은 당분간 환율과 반도체 수급이라는 두 변수를 함께 확인해야 하는 구간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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