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고의 ‘2학년 왼손 에이스’ 한규민(등번호 29)이 104구 역투를 펼친 가운데, 대전고가 제80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에서 디펜딩 챔피언 성남고를 연장 10회 승부치기 끝에 5-4로 꺾고 2회전에 진출했다. 경기는 3일 서울 신월야구장에서 열렸으며, 대전고는 1차전에서 초반 2실점의 흔들림을 이겨낸 뒤 한규민의 구위와 타선의 적시타를 앞세워 승리를 완성했다.
위기서 불이 붙은 ‘한규민 시간’
대전고는 1회부터 안타와 실책이 겹치며 2점을 먼저 내줬다. 그러나 성남고가 주도권을 이어가던 2회말, 한규민은 예정보다 빠르게 마운드에 올라 1사 주자 1,2루 위기를 맞았다. 이 과정에서 폭투가 나오며 2,3루까지 허용했지만, 한규민은 성남고 1번 타자 정의택을 2루수 뜬공으로 처리하고, 2번 타자 김건우를 삼진으로 돌려세워 추가 실점 없이 이닝을 정리했다.
이후 한규민은 경기 중반 이후 페이스가 더 선명해졌다. 경기 후반 4회부터는 완전히 흐름을 장악하며 9회까지 이어지는 구간에서 사실상 ‘무안타’에 가까운 제압을 보여줬다. 최종 성적은 7이닝 2피안타 2볼넷 7탈삼진 1실점. 특히 투구 수는 104개로, 고교야구 한 경기 최다 투구 수 기록(105개)에 단 1개가 모자랄 정도로 강행군이었지만, 타자들을 상대로는 선구안과 타이밍을 모두 흔드는 제구력을 유지했다.
스스로 말한 “80%만 썼다”…변화구로 타자 타이밍 빼앗아
한규민은 경기 직후 “내가 가진 힘의 80%만 썼다”며 여유 있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상대 타자들이 직구에 대한 타이밍을 먼저 맞추려는 흐름이 보여 체인지업과 스위퍼의 비중을 늘렸고, 그 선택이 결과로 연결됐다고 설명했다. 이 대회와 같은 토너먼트 구도에서는 한 번의 이닝이 승패를 가르는 만큼, 단순한 구속 경쟁이 아니라 변화구 구사와 타이밍 교란이 승부처에서 더 크게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이날 한규민의 최고 구속은 144km를 기록했다. 시즌 최고 기록(147km)과 비교하면 크게 앞서지는 않지만, 체인지업·슬라이더·스위퍼를 상황별로 섞어 던지며 타자들의 타격 타이밍을 늦추거나 빼앗는 장면이 반복됐다. 2학년 투수로서 3학년으로 이어지는 상급자들의 타격 리듬과 승부 감각을 상대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지만, 그는 “프로에서는 열 살 넘게 차이 나는 선배들도 삼진을 잡아내야 하지 않나. 한 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며 담담하게 받아쳤다.
대전고 타선도 “한 방 + 득점 생산”
투수전 양상이 짙던 경기에서 대전고는 타선 역시 꾸준히 득점을 생산했다. 3회초 1사 뒤, 1번 타자이자 유격수 우주로가 솔로 홈런으로 추격의 불씨를 살렸다. 이후 대전고는 수비에서도 안정감을 보이며 한규민의 마운드가 무너지지 않도록 경기 흐름을 지탱했다.
특히 5회초에는 2사 1,2루에서 적시타가 나와 점수 차를 좁혔다. 6회 공격에서는 주루 플레이가 득점으로 연결됐다. 2사 1,3루에서 1루 주자 김용욱이 2루 도루를 시도하다 런다운 상황에 걸리며 흐름이 흔들렸고, 그 틈을 타 3루 주자 오라온이 홈으로 파고들어 동점을 만들었다. 투수전에서 동점이 잡히는 순간은 ‘심리’와 ‘전술’ 모두에 영향을 주는 만큼, 이 득점이 경기의 방향을 바꿨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연장 10회 승부치기…희생번트로 주도권 잡아
정규이닝에서 승부를 가리지 못한 두 팀은 무사 1,2루에서 시작하는 승부치기로 돌입했다. 대전고는 10회초 희생번트로 1사 주자 2,3루를 만든 뒤, 오라온의 땅볼이 상대 유격수의 실책으로 이어지며 2명의 주자가 홈을 밟아 5-3으로 도망갔다.
성남고도 10회말 희생번트로 똑같이 1사 주자 2,3루의 기회를 잡았으나, 추격은 1점으로 제한됐다. 우주로가 마지막 수비에서 땅볼을 침착하게 처리하며 더 이상의 실점이 나오지 않도록 막아냈다. 이날 공격에서는 홈런과 적시타로 존재감을 보였고, 수비에서는 마지막 승부에서 팀의 고삐를 잡아낸 셈이다.
황금사자기 첫 우승 도전…다음 경기엔 변수
대전고는 1962년 창단 이후 황금사자기 우승 경험이 없는 ‘미완의 챔피언’으로 남아 있었다. 이번 대회에서 첫 우승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한규민은 팀의 중심축이자 승부사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 그는 “내가 있을 때 우승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며 “한 경기 한 경기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던지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다만 한규민은 104구 투구 뒤 4일간 등판 제한에 걸려 다음 경기(원주고와의 경기)에는 마운드에 오르지 못한다. 따라서 대전고는 남은 기간 동안 불펜 운용과 선발 로테이션의 안정성을 어떻게 가져갈지가 관건이다. 이번 승리가 ‘한 명의 영웅’에 의존한 한 경기로 끝나지 않으려면, 투수진 전반의 체력 관리와 득점 루틴이 이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다음 라운드가 더욱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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