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베네수엘라를 강타한 연쇄 지진의 공식 사망자가 5천명을 넘어서면서 재난 대응의 초점이 생존자 수색에서 장기 복구와 이재민 보호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당국이 17일(현지시간)까지 집계한 사망자는 5천69명, 부상자는 1만6천740명으로 발표됐다. 사망자 가운데 일부는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고, 실종자 규모를 둘러싼 추정치도 크게 엇갈리고 있다.
이번 지진은 지난달 24일 규모 7.2와 7.5의 강진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수도 카라카스 북부 해안 지역인 라과이라주에 집중 피해를 냈다. 해안 지역의 주거지와 기반시설이 무너지고 도로 접근성이 떨어지면서 초기 구조가 지연됐고, 피해 규모 파악도 늦어졌다. 당국은 신원 확인을 위해 DNA 채취를 진행한 뒤 시신을 공동묘지에 안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종자 추정치 커지고 구조 임무는 복구 단계로
베네수엘라 정부는 실종자 공식 통계를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야권 집계에서는 약 3만명이 행방불명 상태인 것으로 추산됐다. 유엔은 지진 발생 사흘 뒤 실종자가 5만명에 이를 수 있다고 봤고, 미국 지질조사국은 최종 사망자가 훨씬 더 커질 가능성도 제시한 바 있다. 숫자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 자체가 피해 지역의 접근 제한과 행정 역량 부족을 보여준다.
일부 지역에서는 국제 구조대가 수색과 잔해 제거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구조 작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생존자 구조보다 인도주의 구호, 위험 건물 정리, 생활 기반 복원으로 중심이 바뀌고 있다. 가족을 찾지 못한 주민들이 특정 건물을 수색해 달라고 요청하는 사례가 이어지지만, 구조대는 정부 통합지휘부가 지정한 구역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재민 문제도 커지고 있다. 약 2만명이 임시 대피소에서 생활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상당수 대피소는 식수와 위생시설이 충분하지 않다. 지진 피해 직후에는 의료·구조 인력이 가장 시급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감염병 예방, 안전한 식수 공급, 임시 주거 안정, 아동과 고령층 보호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엘니뇨 경고가 더한 이중 재난
유엔 국제이주기구 관계자는 강한 엘니뇨가 형성될 가능성을 거론하며 베네수엘라 이재민이 추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엘니뇨는 열대 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아지는 현상으로, 지역에 따라 폭염, 가뭄, 홍수, 태풍 등 극단적 기상 변화를 유발한다. 이미 집을 잃은 주민에게 폭염과 물 부족이 겹치면 보건 위험은 빠르게 커질 수 있다.
특히 대피소의 위생 여건이 취약한 상황에서는 높은 기온과 식수 부족이 질병 확산과 영양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복구가 늦어질수록 학교, 병원, 지역 행정망의 공백도 길어진다. 단순히 무너진 건물을 다시 세우는 문제가 아니라, 재난 이후 지역사회가 최소한의 일상 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문제가 된 것이다.
국제 지원 규모와 집행 속도가 관건
국제이주기구는 앞으로 12개월 동안 베네수엘라 지원과 복구에 9천800만달러 규모의 재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유엔은 직접 물적 피해만 67억달러로 추산했으며, 간접 피해를 포함한 경제적 손실은 이보다 훨씬 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항만과 도로, 전력, 의료시설 같은 기반시설 피해가 장기화하면 지역 경제 회복도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관건은 지원 약속이 실제 현장 집행으로 이어지는 속도다. 사망자와 실종자 집계가 계속 바뀌는 재난 초기에는 구호 수요가 빠르게 변한다. 의료품과 식량뿐 아니라 임시 주거, 심리 지원, 신원 확인, 재건 장비가 함께 필요하다. 국제사회가 재원을 확보하더라도 현장 접근, 정부 조정, 지역사회와의 협력이 맞물리지 않으면 피해 주민이 체감하는 지원은 늦어질 수 있다.
베네수엘라 지진은 대형 자연재해가 기후 위험과 결합할 때 복구 부담이 얼마나 빠르게 커지는지를 보여준다. 당장의 수색과 치료를 넘어, 폭염과 가뭄 가능성까지 고려한 대피소 운영과 재건 계획이 필요한 시점이다. 피해 규모가 최종 확정되지 않은 만큼, 앞으로의 집계와 국제 지원 흐름이 복구의 방향을 가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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