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재개방하고 이란이 보유한 고농축 우라늄을 폐기하는 데 대해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뉴욕타임스(NYT)와 CNN 등 미 언론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다만 실제 서명과 세부 문안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이란의 농축 중단·미사일 비축량 등 미국이 중대 쟁점으로 삼아온 핵심 사항은 “추후 협상”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합의는 공식 조약 형태의 서명이 이뤄졌는지 불명확하며, 이날 중 서명이 이뤄질 가능성도 거론됐다. 양측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이 절차에 며칠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 당국자는 큰 틀에서 모즈타바가 동의한 상태라고 언급하면서도, 미국이 보기에 서명될 ‘구체 문서’가 준비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호르무즈 먼저, 핵은 이후”로 실무 로드맵이 갈릴 조짐
미국 정부 쪽 구상은 ‘단계적 접근’에 무게가 실리는 모습이다. 인도를 방문 중인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인터뷰에서 먼저 호르무즈 해협을 즉시 재개방해야 한다고 밝히고, 그 다음에 고농축 우라늄 처리와 “핵무기 보유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둘러싼 본격 협상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72시간 만에 냅킨 뒷면에 끄적이는 식으로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하며, 사안별로 단계가 나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와 함께 CNN은 미 당국자를 인용해 대이란 제재 완화와 이란 자산 동결 해제는 호르무즈 해협이 재개방되고 이란이 핵합의 이행에 들어갈 때만 가능하다는 취지로 전했다. 즉, 에너지로 대표되는 ‘즉각적 안정’과 핵 프로그램 관련 ‘검증 가능한 후속 조치’ 사이에 조건-순서가 놓일 가능성이 크다.
전쟁 이후 ‘지렛대’가 바뀔 수 있다는 우려
협상 전개가 빠르게 진척되는 만큼, 중동 지역과 에너지 시장에서는 안도와 불안이 동시에 표출되고 있다. WSJ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걸프 지역 아랍국가들은 현 MOU 논의에서 호르무즈 봉쇄를 우선 완화하되 이란의 핵 프로그램 문제는 뒤로 미루는 방식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전후 체제에서 핵 위협의 실질적 제거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은 채 압박이 완화될 수 있다고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걸프 주요 산유국들도 단기적으로는 에너지 시설 공격과 해상 교통 차질을 막고 석유 수출 재개를 기대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통제를 ‘협상 카드’로 다시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경계한다. 영국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한 연구원은 이란이 전후 체제에서 이전과 다른 지렛대를 갖게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미 공화당 내 ‘협상 서두르기’ 논쟁도 격화
한편 워싱턴에서는 협상이 임박해질수록 내부 반발도 커지는 분위기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상원 군사위원장인 로저 위커는 22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합의 추진이 “가치 없는 합의”로 이어질 수 있다며 강경한 경고를 내놨다. 그는 이란의 재래식 병력을 파괴한 뒤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에 나서야 한다는 취지로도 발언했으며, 공화당 내에서 보복의 위험 때문에 직언을 피하려는 분위기와 대비되는 수준의 발언으로 주목받았다.
위커 위원장뿐 아니라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 등 트럼프 1기 인사들도 잇따라 우려를 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대해 자신이 추진하는 합의가 오바마 행정부의 핵합의와 다르다고 주장하면서, 협상팀에 합의를 서두르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서명·세부 합의”가 관건…협상 타임라인은 60일
이번 논의는 이란과의 종전을 전제로 한 양해각서(MOU) 체결에 근접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미국과 이란은 휴전을 60일 연장하는 방안을 두고 그 기간에 핵 협상을 진행하는 구상을 갖고 있다. 다만 ‘원칙 합의’ 단계에서 쟁점이 추후로 밀리면, 결과적으로 어떤 조치가 어떤 순서로 이행되는지—그리고 검증과 시행을 어떻게 담보할지—가 협상의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앞으로는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의 구체적 시점과 범위, 고농축 우라늄 폐기 방식(단순 폐기인지, 저장·대체 절차가 포함되는지), 그리고 이란의 농축 활동·미사일 비축량 등 민감 사안이 후속 협상에서 어떻게 다뤄지는지가 핵심 체크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이스라엘과 걸프 국가들의 우려가 현실화되는지 여부도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간은 미국 편’이라고 강조한 만큼 협상은 속도를 낼 가능성이 있지만, 내부 반발과 지역 안보 우려가 커질수록 세부 문안 협상은 더 복잡해질 수 있다. 서명 여부와 본문 조항의 윤곽이 드러나는 다음 단계가, 이번 ‘원칙 합의’를 실제 안정으로 연결할지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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