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플이 아이폰과 같은 자사 기기에 들어가는 칩 일부의 생산을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의 수탁생산(파운드리) 시설에서 맡기는 방향으로 예비 합의에 도달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두 회사가 관련 협상을 진행해온 기간이 1년 이상인 것으로 전해지는 가운데, 계약의 구체적 범위와 어떤 칩이 인텔에서 생산될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이 움직임은 애플이 그동안 주로 대만 TSMC에 의존해온 생산 구조에서 벗어나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동시에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을 다시 살릴 “중대 전기”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보도에 따르면 협상 과정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물밑에서 인텔과 애플의 협력을 촉구한 영향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TSMC 한 곳 의존”의 한계…생산 여력 부족이 배경
애플은 자체 설계 칩(SoC)을 사용해 제품을 차별화해왔지만, 글로벌 수요가 늘면서 공정(첨단 공정)의 가용성이 제한되며 공급 제약을 겪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애플 CEO 팀 쿡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제품 구동 칩이 생산되는 첨단 공정 가용성 때문에 공급 제약이 있었다”며, 4~6월 분기에는 이러한 공급 부족이 더 심화할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이 TSMC 외 파운드리로 눈을 돌리는 것은 공급 리스크를 분산하려는 전략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WSJ 보도에 따르면 애플은 인텔뿐 아니라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과도 칩 생산 논의를 진행 중이며, 최근에는 삼성전자가 텍사스에서 건설 중인 테일러 공장을 방문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텔 파운드리 ‘재건’의 분기점…어떤 칩이 될지는 미정
인텔은 지금까지 파운드리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며 사업 재건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이번 소식은 애플이 인텔 파운드리와 손잡을 경우, 인텔 입장에서는 대형 고객 확보를 통해 파운드리 전략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기대감을 만들 수 있다.
다만 보도에서는 어떤 애플 칩이 인텔의 공장에서 생산될지가 아직 불분명하다고 전했다. 양사가 “칩 생산의 일부를 인텔 파운드리 시설에서 생산한다”는 방향의 예비 합의를 했지만, 구체 제품군·생산 비중·공정 수준 등 세부 계약 내용은 최종 확정 단계로 보인다. 두 회사는 칩 생산 관련 협상을 1년 이상 진행해왔고 최근 수개월 동안 공식 계약 내용을 조정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애플과 인텔은 과거 협력 관계도 있었다. 2006년부터 2020년까지 맥용 프로세서 협업을 이어왔지만, 애플이 자체 설계 칩으로 전환하면서 관계는 사실상 종료 수순을 밟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한 과거 아이폰 준비 단계에서 애플이 인텔에 스마트폰용 칩 제작을 요청했으나 인텔이 거절했다고 알려져, 이번 “다시 연결되는” 협력은 공급망과 기술·사업 환경 변화 속에서 재편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트럼프 행정부의 ‘당근’…인텔-애플 협력에 힘 실었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합의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물밑 지원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당시 미 상무부 장관이 팀 쿡 애플 CEO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스페이스X 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등과 여러 차례 만나 인텔과의 협력을 이끌어내도록 설득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백악관 회동에서 쿡 CEO에게 인텔과의 협력을 직접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나는 인텔을 좋아한다”고 말하며, “우리가 인텔에 들어가자마자 애플과 엔비디아가 들어왔고 많은 유능한 인재들도 들어왔다”는 취지로 발언한 바 있다.
행정부 차원의 지원은 투자·정책과 맞물린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약 90억 달러 규모의 연방 보조금을 인텔 주식으로 전환했고, 이로 인해 미국 정부가 인텔 지분 약 10%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WSJ는 애플과 인텔의 계약이 성사되면 인텔이 테슬라·스페이스X, 엔비디아와의 파트너십에 더해 세 번째 ‘중요 파트너십’ 고리를 얻게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애플과 인텔의 ‘침묵’ 속 주가는 먼저 반응
WSJ 보도에 대해 애플과 인텔 양사는 논평을 거부했다. 그럼에도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인텔 주가는 이날(보도 직후) 장중 약 13% 상승해 미 동부시간 오후 2시40분 기준 123달러 선을 오르내렸고, 애플 주가도 전일 대비 약 1.8% 올라 292달러 선에서 등락했다.
이번 협상이 실제 계약으로 구체화되면, 애플은 TSMC 한 곳에 쏠린 생산 구조를 줄일 수 있고, 인텔은 파운드리 사업 재건의 실마리를 확보할 가능성이 커진다. 다만 어떤 공정과 어떤 제품에 적용되는지가 가려지지 않은 만큼, 투자자와 업계는 “범위와 일정”을 확인하는 단계로 넘어갈 전망이다.
향후 관전 포인트: 계약 확정·생산 일정·공정 수준
앞으로는 예비 합의가 최종 계약으로 전환되는 과정이 핵심이다. 특히 애플이 인텔 파운드리에서 생산할 칩의 종류(모바일 SoC 여부 등), 적용 공정, 물량 배분, 그리고 언제부터 양산에 들어가는지가 공급망 효율과 비용 구조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애플이 삼성 등 다른 파운드리와의 논의를 어떻게 조율할지도 주목된다. 공급 제약이 완화되기까지는 시차가 있을 수 있어, 애플의 ‘다중 공급’ 전략이 실제로 리스크를 얼마나 줄이는지—그리고 인텔 파운드리가 경쟁 구도에서 얼마나 입지를 회복하는지—가 업계의 관심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댓글